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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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이 아니다
  • 연합뉴스
  • 승인 2018.10.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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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대다수 미국인은 세계적으로 가장 역사가 깊고 성공적이라고 자부하는 미국 민주주의를 지킨 힘이 잘 설계된 헌법에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최근 주목받는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는 이 같은 통념을 뒤집는다.

두 교수는 함께 펴낸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 펴냄)를 통해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도 그것만으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지킨 더욱 근본적인 힘은 헌법과 사법 시스템이 아니라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라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에서 나온다고 분석한다.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를 뜻하며, 제도적 자제는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붕괴한 다른 나라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두 규범이 무너지면서 빚어진 정당 간 적대적 대립과 극단적 정치 양극화가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됐다고 진단한다.

"이제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흔들리고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 시작된 민주주의 규범의 침식은 2000년대에 들어서 가속화되었다. 특히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공화당 인사들은 민주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자제의 규범을 저버렸다. 이러한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 가속화되었을지 몰라도, 그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화제를 일으켰으며, 이를 책으로 확장해 펴냈다.

책은 전 세계적으로 쇠퇴하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특히 독재자가 될 소지가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 파괴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로 극단주의자를 선거 전에 걸러내는 정당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이 사라진 점을 든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각 정당이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동료 정치인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비민주적으로 비쳤으나 일종의 동료평가를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 경험이 없는 대중선동가와 극단주의자들을 가려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정당마다 더 민주적인 방식이라는 명목으로 프라이머리를 확대해 당 지도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게 함으로써 후보를 검증하는 정당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책은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신호를 제시한다. 말과 행동으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는가,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는가,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가,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 드는가.

또한 선출된 독재자가 심판을 매수하고, 비판자와 경쟁자를 탄압하며, 운동장을 기울이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분석한다.

심판 매수는 주로 공직자나 비당원 관료를 해고하고 측근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비판자와 경쟁자에 대한 입막음은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통해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방식 등을 통해 이뤄진다.

한발 더 나아가 독재자는 게리맨더링(특정 후보나 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게임마저 바꾼다.

"미국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이제 미국 국민은 지금껏 그들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었던 기본 규범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규범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 … 이제 그 규범이 인종 평등과 전례 없는 민족 다양성 시대에서도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 그것은 이제 미국 사회의 도전 과제로 남았다. 그리고 동시에 기회로 남았다."

박세연 옮김. 352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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