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칼럼] 김명환, 문성현의 손을 계속 뿌리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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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칼럼] 김명환, 문성현의 손을 계속 뿌리칠 텐가
  • 연합뉴스
  • 승인 2018.11.2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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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9월 울산, 부산, 마산, 창원 등 공장 도시의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노동자투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됐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산업화 과정에서 억눌린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분출했다. 근로자 1천 명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 중 75.5%에서 쟁의가 일어났다. 민주노조들이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약칭 전노협) 결성을 거쳐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약칭 민노총)이 정식 출범했다.

민노총 탄생까지 그 정신은 '연대'(solidarity)였다. 민노총은 오로지 노동자만의 힘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고, 오로지 노동자의 이익만을 위해 결성된 것도 아니었다.

▲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과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 2018년 5월 4일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의장과 노사정 대표자 조찬 간담회에서 문성현 위원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얘기하고 있다. 2018.5.4 (자료사진)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공간은 대학생, 지식인, 화이트칼라까지 참여한 6월 민주항쟁이 열었다. 노동운동은 연대에 기초해 외연을 확장했다. 80년대 민주노조 결성 과정에서 '노학(勞學) 연대'는 빼놓을 수 없다. 진보적 지식인, 대학생들은 노동운동을 지원했다. 87년 대우조선 파업투쟁을 지원하다가 구속된 이가 노무현 변호사다. 거슬러 올라가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학생들이 노동현장으로 향했다. 학생운동가들의 노동운동 투신은 8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문성현도 있다. 훗날 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이 됐고, 지금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민노총은 1995년 11월 11일 창립선언문에서 노동자는 "사회 개혁과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자처하며, "인간다운 삶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조건의 확보, 노동기본권의 쟁취, 노동현장의 비민주적 요소 척결, 산업재해 추방과 남녀평등의 실현"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계급적 이익만 배타적으로 챙기기보다는 공동체의 발전을 고려하는 연대 의식을 담았다.

최초의 노동영화인 '파업 전야'가 1990년 제작됐다. 상영금지 처분을 당하자 대학가에서 상영됐다. 대학 캠퍼스에 전투경찰이 투입됐다. 결사 저지한 대학생들이 영화를 지켰다. 노조 결성을 탄압하는 폭력 구사대에 맞서는 영화 장면에서 '철의 노동자' 노래가 흐른다. "민주노조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 빼앗긴 우리 피땀을 투쟁으로 되찾으세 / 강철같은 해방의지 와서 모여 지키세 / 투쟁 속에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세 / 단결만이 살길이요 노동자가 살길이요…". 이후 민노총 투쟁 현장에서는 어김없이 불리는 노래가 됐다.

'철의 노동자'를 작사 작곡한 안치환은 2010년 노동의 새로운 변화를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 제목은 '내 이름은 비정규직'.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잘릴 수 있어 / 내 이름은 비정규직 / 파리 목숨보다 더 한심한 신세 / 내 이름은 비정규직 / 알바도 아니고 철밥통도 아니고 / 이 시대의 슬픈 그 이름 / 아! 2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그 죄로 / 하루아침에 잘려버렸소 / 찍소리도 못할까 보냐 / 사람대접받고 살련다 / 아! 내 이름은 노동자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여 년이 흘렀다.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민노총은 '내 이름도 노동자'라는 비정규직 문제에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자영업, 알바 문제에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빼앗긴 피땀"도 되찾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 맞대야 한다. 민노총을 태동시킨 연대 정신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역사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그의 연대 정신 때문이다.

이제 민노총이 '철의 노동자'를 목청껏 부르며 투쟁 만을 외칠 때가 아니다.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를 주축으로 한 민노총이 스스로 약자라고 자처하기 전에 민노총 울타리 밖 노동자들의 현실을 우선 둘러봐야 한다. 전체 노동자의 문제를 자기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민노총 노동자의 노동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노동이 존중받아야 한다. 대화하고 타협하며 양보하고 고통 분담해야 한다.

지금 민노총은 책임 있는 경제 주체다. 기술발전에 따른 노동의 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경사노위 산하에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라는 낯선 위원회가 있는 이유를 곱씹어야 한다. 기술혁명에 따른 공유경제 도래로 자율주행 차량이 직접 소비자와 연결되는 시대가 오면 택시 노동자는 필요 없게 된다. 노동이 없어질 수 있는 공유경제 시대에 새로운 사회계약은 필수다. 사회적 대화는 불가피하다. 경사노위에 민노총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경사노위 출범식 때 민노총이 참석하지 않은 아쉬움에 위원장 문성현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민노총을 탄생시킨 1세대 노동운동 대부다. 민노총 위원장 김명환이 선배 문성현이 내민 손을 내칠 이유가 없다. 경영계에서는 경사노위가 노동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입이 나와 있는 터다. 그런데도 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박차는 것은 창립선언문 정신을 저버리는 길이고, 더 약한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외면하는 기득권 노조의 틀에 갇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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