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칼럼] 다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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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칼럼] 다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연합뉴스
  • 승인 2018.12.3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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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일, 시가총액 1조 달러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자사 근로자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약 1만6천800원)로 올렸다. 세계 1위 부자인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가 '노동착취'라는 비난을 피하려 한 것인지, 우수 인력을 유인하려는 계산인지 지켜볼 일이다. 12월 10일 저녁 8시, 생방송 대국민 담화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9년 1월부터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약 12만8천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친기업 정책을 고수해온 그가 '노란 조끼' 시위 한 달 만에 내놓은 민심 수습책이었다.

최저임금은 2018년 나라 안팎에서 이슈였다. 2019년 새해에도 한국 사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최저임금이다.

복잡하기로 세계 으뜸이라는 우리 임금구조의 문제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실마리로 쏟아져 나왔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부담을 호소했다. 아르바이트생이나 경비원 등 최저임금 혜택을 받아야 할 고용 취약층이 일자리를 잃는 역설도 생겼다. 대기업은 주휴 시간 반영으로 고액 연봉자도 최저임금에 미달한다고 하소연했다. 소득·자산 양극화,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도 최저임금이 지목됐다. 반면, 편의점이 4만개나 생기게 된 과다 출점이나 가맹점 본사 수수료율, 기본급 인상을 미룬 채 상여금과 수당으로 땜질해온 기업의 책임,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 등은 덜 부각됐다. "모든 게 최저임금 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은 많지만, 실제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도 아직은 정리되지 않은 듯하다.

노사는 정반대 목표를 향해 달렸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 일부를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5월 국회를 통과하자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줄었다며 반발했다. 연말에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입법 과정에서 또 충돌했다. 경영계는 주휴 시간을 최저임금 산정 공식에 넣는 문제를 공격했다.

▲ [연합뉴스 자료 그래픽]

이쯤에서 되짚을 것이 있다. 우리는 최저임금의 혜택을 얼마나 누렸나.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 최저임금제의 근거가 마련됐지만, 1988년 1월 1일에야 최저임금법이 시행됐다. 최저임금법 제1조는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헌법 제32조는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의 목적을 저임금을 해소해 임금 격차를 완화하고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2019년 정부는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응답해야 하고,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에도 나서야 한다. 사회적 대화에서 최저임금 인상속도가 빨랐고 부작용이 많다고 가닥 잡히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조 원을 투입한 일자리 안정자금과 청년 일자리 대책의 '가성비'도 체크해야 한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현실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최저임금제의 원래 취지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법정 주휴 시간까지 계산에서 빼자거나, 최저임금제 자체를 다시 생각하자는 일각의 주장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이들 잊었지만, 2017년 대선 때 많은 후보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문재인 후보가 2020년, 홍준표·안철수 후보는 2022년 달성을 공약했고, 유승민 후보는 연간 15%씩 올려 2020년까지 1만원으로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영국 예술평론가 겸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1819∼1900)의 책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is Last)는 성경의 포도밭 이야기에 빗대 최저임금의 의미를 묻는다. 포도밭 주인은 하루 1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차례로 일꾼들을 고용했다. 저녁에 일제히 1데나리온씩 줬다.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은 똑같은 대우에 투덜댔다. 포도밭 주인이 말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1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마태복음 20장)

러스킨은 "노동의 정당한 보수는 장래에 거의 동등한 가치의 노동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액수의 돈"이라고 지적했다. 또 "빈자는 부자의 재산을 침해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주지되고 공언됐지만, 동시에 부자 역시 빈자의 재산을 침해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도 주지되고 공언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너무 급진적이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낭만적인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라는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선방에서 번뇌 망상이 피어오를 때 내리치는 큰스님의 죽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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