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문·비명' 품은 채 지나온 39년…505보안부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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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고문·비명' 품은 채 지나온 39년…505보안부대를 가다
  • 연합뉴스
  • 승인 2019.03.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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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시설 이유로 10년 가까이 방치…사적지 지정하고 역사 공간 활용 추진 중
▲ 5·18 계엄군 핵심 505보안부대 19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505보안부대 옛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2019.3.19 (사진=연합뉴스)

"여기가 5·18 민주항쟁 때 시민들을 고문했던 지하실입니다"

20일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제26호로 지정된 505보안부대 옛터를 찾았다.

505보안부대는 5월 항쟁 당시 계엄군 사령부의 분신처럼 움직인 핵심 부대로 여기로 끌려온 시민들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10년 가까이 텅 빈 채 방치돼 온 이곳은 최근에서야 보존과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위병소 건물이 세워진 입구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과 함께 큼지막한 철문이 쇠사슬과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다.

문을 열고 입구를 지나자 3만8천459㎡ 부지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본관 건물과 내무반 별관, 면회실, 식당·이발소 등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본관에서 왼쪽으로 돌아간 구석에는 지하실로 통하는 검은색 철문이 보였다.

모진 고문에 시민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던,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쳐다보기조차 힘든 어둠의 공간이었다.

해가 중천에 뜬 오후 시간이었지만 지하실 내부는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손전등을 켜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 '공포의 지하실' 고문 자행한 505보안부대 19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05보안부대 옛터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문이 자행된 지하실로 향하는 문이 열려있다. 2019.3.19 (사진=연합뉴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음습한 공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이곳은 크고 작은 방 10여개가 미로처럼 배치돼 있었다.

곳곳이 파손되고 허물어진 채였다.

이 가운데 두꺼운 쇠창살로 만들어진 창문 달린 한 공간은 빛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VIP실로 불렸다고 한다.

화장실 시설이 갖춰진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선 물고문도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실은 본관 중앙계단을 통해서도 내려갈 수 있는 구조였다.

505보안부대 관계자들은 이 계단을 통해 감금돼 있던 시민들을 조사하러 내려갔을 터였다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울리는 취재진의 발걸음 소리가 당시 시민들이 들었을 공포의 군화 소리처럼 들려왔다.

중앙계단을 중심으로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1층 복도는 부대 사무실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있었다.

음습한 지하실에 비해 지상 사무실에는 큼지막한 창문이 달려있어 그 너머로 탁 트인 공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창문 유리는 모두 깨진 채 바닥 곳곳에 쌓여있었고, 창문틀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부대가 이전할 때 모두 파손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방치된 탓인지 내부 천장은 곳곳이 깨져 구멍이 뚫려 있었고, 바닥엔 야생동물의 배설물도 발견됐다.

본관 앞 공터는 최근까지 주민들이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본관 왼편에 있는 식당·이발소로 사용했던 건물은 2009년 발생한 화재로 모두 소실돼 외부 벽돌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505보안부대는 2005년 광주 31사단으로 이전한 뒤 10년 가까이 방치되다 2014년 광주시가 국방부로부터 부지를 넘겨받았다.

▲ 방치된 505보안부대 건물 19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에 505보안부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은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 내부 모습 2019.3.19 (사진=연합뉴스)

광주시는 505보안부대 부지를 역사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조만간 이 건물을 그대로 사용해도 안전한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광주시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본관·식당·면회실 등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특히 505보안부대 관계자·목격자·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을 구성, 5월 항쟁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5월 항쟁이 이후인 1990년에 지어진 본관 뒤편의 내무반 별관 건물엔 청소년 창의 공간 등을 마련하고 유휴부지는 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이곳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원형을 최대한 복원하는데 힘쓸 것"이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5월 단체는 이곳을 역사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명목으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원형의 모습이 훼손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5·18기념재단은 505보안부대가 당시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적 가치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이날 긴급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최정기 교수와 조선대학교 민주평화연구원 이건근 교수 등이 참석해 505보안부대 옛터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 사적지를 복원하는 관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발표·토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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