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최고] '황혼육아' 마다치 않는 부모님, 건강 괜찮을까
상태바
[건강이 최고] '황혼육아' 마다치 않는 부모님, 건강 괜찮을까
  • 연합뉴스
  • 승인 2019.05.04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년기 손주 육아부담에 '손목건초염·관절염·우울증' 늘어
주말이라도 육아부담에서 벗어나도록 자식들이 노력해야

서울의 관절전문병원 몇곳에 인터뷰에 필요한 환자를 부탁했다. 환자의 조건은 손자나 손녀를 돌보느라 무릎이나 손목 등 관절 건강에 문제가 생겨 현재 치료를 받는 경우였다.

병원들의 회신은 매우 빨랐다. 그런 환자들이 적잖기 때문에 섭외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 섭외를 부탁한 지 1시간도 채 안 돼 A병원에 다니고 있는 박모(68.여)씨와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박씨는 서울과 지방에서 각기 맞벌이 중인 아들 부부의 3살(손녀), 5살(손자) 아이를 2년째 거의 혼자 돌보다시피 한다고 했다.

원래는 주중 저녁과 주말에는 아들 부부가 아이들을 데려가는 게 양육 전 약속이었지만, 공무원인 며느리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은 이후부터 평일은 거의 종일 아이를 돌본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손목이 욱신욱신 쑤시는 통증이 오기 시작해 병원을 찾은 결과 '손목건초염'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다.

C병원에 다니고 있는 노모(61.여)씨와도 연락이 닿았다.

노씨는 맞벌이 중인 큰딸의 아이 4명(8살, 6살, 4살, 3살)과 작은딸의 아이 1명(2살)을 돌보는 경우였다. 손주 육아 기간만 2013년부터 시작해 벌써 6년째에 접어든다. 초창기 몇 년만 해도 큰딸 아이들의 육아를 전담하느라 인천의 큰딸 집에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두 딸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인천과 상도동(둘째 딸 집)을 오갈 정도로 형편이 나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사이 노씨에게는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손목건초염이 생겼다.

노씨는 "손주를 안거나 기저귀를 가는 과정에서 주로 왼손을 쓰다 보니 언제부턴가 왼 손목에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면서 "아이들 때문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무릎도 좋지 않았는데, 손목 통증을 치료하러 병원을 오가는 중에 넘어지면서 관절염도 더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 노부모 황혼 육아(PG)

박씨와 노씨처럼 '황혼 육아'를 하다 건강을 해치는 조부모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질환은 역시 손목건초염, 관절염 등에 의한 통증과 우울증이다.

손목건초염은 부상으로 인한 통증이 아닌 과사용증후군의 한 형태다. 손목의 과사용으로 힘줄을 싸고 있는 활액막 또는 활액막 내부에 염증성 변화가 생겨서 통증, 부종, 관절 운동 제한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증상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릴 때 통증이 있고, 주먹을 쥐거나 걸레 비틀기 등의 동작을 하기 힘들다. 전기가 오는 듯 찌릿하기도 하고, 아픈 부위가 위아래로 옮겨 다니기도 한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일을 할 때 손목 부위가 붓거나 딱딱해지는 것도 주요 증상이다.

이 질환은 처음에는 며칠 지나면 저절로 호전되기도 하지만 나중엔 물건을 잡기가 힘들 정도로 심해질 수 있다.

만약 엄지손가락을 나머지 손가락으로 감싸 쥔 뒤 손목을 아래로 꺾을 때 심한 통증이 있다면 손목건초염일 가능성이 크다.

염증 초기라면 우선 통증이 발생하는 곳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후 보호대를 손목 관절에 고정한 다음 온·냉찜질을 하면 통증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문제는 손주를 돌보는 노인들이 미안한 마음 때문에 이런 증상이 있어도 자식들에게 터놓고 얘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증상이 생기고 1∼2주 후에도 통증이 지속하거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등의 약물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수술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방치하면 주변 힘줄과 근육에도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손목손상을 예방하려면 평소 손목을 꺾는 스트레칭이 도움이 된다. 팔을 뻗은 상태에서 손등을 위로한 채로 손목을 아래로 꺾어 손바닥 쪽 팔 근육과 팔꿈치 안쪽이 당겨지는 것이 느껴지면 10∼20초간 정지하고, 이를 2∼3회 반복해 주면 좋다. 반대로 손목을 손바닥으로 꺾는 스트레칭을 병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 "할머니만 믿어라" 인구보건복지협회 부산지회가 마련한 조부모 육아교실 수업이 한창이다. 맞벌이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자를 돌봐주는 부모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가운데 예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한 육아교실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15.6.4 <<인구보건복지협회 부산지회>>

관절염도 황혼육아 때 주의해야 할 질환이다.

체중이 4∼10㎏에 이르는 아기를 수시로 안아주고, 들어 올리고, 씻기는 과정에서 이미 노화가 진행되는 몸에 무리한 하중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또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질환이 늘어나기도 하고, 원래 갖고 있던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우울증 등 만성질환이 악화할 수도 있다.

실제 황혼 육아를 하는 노인에게서 우울증이 더 심하다는 분석이 있다.

부모자녀건강학회지 2017년 12월호에 실린 논문(손자녀 양육 여부에 따른 조모의 주관적 건강상태, 저자 최혜정)을 보면, 손자녀 양육 조모(20명)와 비양육 조모(22명)의 우울 점수를 비교한 결과 각각 26.6점과 19.6점으로 차이가 컸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는 "오랜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는 노인의 경우 사회활동이 제한되면서 고립감, 외로움, 소외감을 느끼는 수가 많다"면서 "이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 주부들과 비슷한 현상이지만, 노인에게는 우울증 등 문제가 더해져 한층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황혼육아를 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깊은 이해와 배려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자식들은 주말이라도 부모가 육아에서 벗어나 적절히 스트레스를 해소할만한 여유를 갖도록 하고, 부모들은 자신의 만성질환과 건강문제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