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여성·인권 운동가 이희호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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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여성·인권 운동가 이희호를 떠나보내며
  • 연합뉴스
  • 승인 2019.06.1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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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남편 곁으로 떠나갔다. DJ의 정치적 동지이자 반려자였던 이 여사는 시련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함으로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여성·장애인 인권 신장에 족적을 남겼다. 특히 당대 여성으로는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고서 깨인 눈으로 여성문제 연구기관과 단체 창설 및 운영을 주도한 1세대 여성 운동가로 각인됐다. 1962년 정치인 DJ와 결혼한 뒤로도 고인의 지향은 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통령 부인이 되고 나서도 수동적 내조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 활동을 계속하며 여성부 신설과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 등 국민의 정부 여성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의 이런 발자취 때문인지 정치권도 여야와 정파를 뛰어넘어 모처럼 한목소리로 고인의 넋을 기리고 나섰다. 여야가 한 치 양보 없는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도 추모 대열에 함께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것은 한편으로 고인의 성취가 그만큼 남달랐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정당의 논평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고인은 성 평등뿐 아니라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증진에 헌신했다. 1971년 DJ의 첫 대선 지원 유세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라고 말했고 유신 시절 해외에 있던 DJ에게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독려했다는 이야기가 회자하는 것은 생전 고인이 가졌던 민주주의 신념과 이해,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나아가 고인은 2000년 대통령 부인으로서 남편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이래 DJ 퇴임 이후인 2011년, 2015년까지 모두 세 차례 공식 방북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조성을 위해 힘썼다.

그렇게 한 세기 가까운 우리 현대사의 역경과 좌절, 영광을 뒤로하고 세상과 작별하며 이 여사가 남긴 유언은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였다. 고인은 국민들이 김 전 대통령과 자신에게 베푼 많은 사랑에도 사의를 표하고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는 갈수록 더 찢기고 강퍅해지는 한국 사회와 국민의 삶에 주는 희망이자 위안이다. 고인의 유지대로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여 행복을 더 크게 가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 능력을 갖춘 정치인과 공직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민족의 평화통일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 실효 있는 대북정책과 비핵화 해법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일도 절실한 과제다. 민주주의 신념이 투철한 여성지도자가 더 많이 배출되어 여성운동이 더 성숙해지고 여성 인권과 지위가 강화된다면 그 역시 유지에 부합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DJ 평생 동지 이희호'와 더불어 '민주화·평화·여성 운동가 이희호'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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