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10주기에 돌아보는 햇볕정책·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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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10주기에 돌아보는 햇볕정책·한일관계
  • 연합뉴스
  • 승인 2019.08.1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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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다.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 하고 2009년 8월 18일 영면에 든 지 10년 됐다. 정치인 김대중은 해방 후 한국의 첫 수평적 정권교체 주역이자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그러나 온갖 탄압과 박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다섯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민주주의와 인권에 헌신한 그의 인생은 한 정치인의 성공을 넘어 국민적 자존감의 성취라 할 만하다.

오늘의 난제가 그의 정치철학과 정책에서 해법의 영감을 찾게 한다.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이 진행되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일 갈등이 폭발하여 동북아 질서가 요동치는 요즘이다. 격변의 시기, 중심부를 관통하는 의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소환되는 이유다. 햇볕정책은 대북 긴장완화, 남북 평화공존 정책으로, 2000년 6월 DJ의 방북 정상회담에 이은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결실을 봤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 이어 그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여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제를 지향하며 북미대화를 촉진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우여곡절 속에서 대결 일변도보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증진하며 통일을 지향하는 정책 심화는 여전한 숙제다.

햇볕정책 성과는 노벨평화상을 안겼다. 수상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노벨위원회는 "일본 등 이웃 국가와의 화해를 위해서도 노력했다"고 수상 사유를 덧붙였다. 그가 1998년 10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일본 총리와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높이 산 것이다. DJ는 일본의 식민지배 반성을 유도하고 당대 여론의 압도적 반대에도 일본문화 개방을 단행했다. 미래지향적 공동선언은 양국관계의 지향을 포괄한 교과서라 불릴 만큼 다양한 분야의 실천과제를 망라했다. 일본은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로 대표되는 우익 세력들이 양식 있는 자국민의 비판과 선배 현인들의 결심을 짓밟고 퇴행하고 있다. DJ는 민주주의가 낙후하고 우경화하는 일본을 걱정하며 동북아에서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킬 거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강의 이해가 교차하는 한국은 모든 국민이 외교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외교는 곧 생명이라는 판단이었다. 지금 우리는 운명을 좌우하는 외교를 지혜롭게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평화경제'는 고인이 남북교류를 언급하며 철의 실크로드와 압록강의 기적을 거론한 것과 겹친다.

만난을 헤치며 일생을 보낸 그는 행동하는 양심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서생의 문제의식만으론 안 되고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정세를 읽고 매번 도전에 직면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았지만 역사적 장소에서 큰 눈물을 보인 걸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찾은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1994년 민주화 동지 문익환 목사의 빈소에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그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뜻을 모아 반란죄 혐의로 무기징역과 17년형을 각각 선고받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한 것은 용서와 화해의 결단이었다. 1987년 대선 후보 단일화 실패 등 고인에게도 흠결은 많았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헌신, 한반도 평화 노력, 외환위기 극복 등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한평생을 돌아보며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고 썼다. 이 통찰의 시효가 무한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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