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찬밥 먹은 게 며칠인지" 가난한 노인들의 코로나19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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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찬밥 먹은 게 며칠인지" 가난한 노인들의 코로나19 생존기
  • 연합뉴스
  • 승인 2020.03.0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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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 복지 시스템에 기대 연명…지자체는 '각개전투'하며 복지 수요 감당
좁은 방안에서 코로나19 버티는 노인 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노인이 음식과 마스크를 들고 온 구청 노인복지과 공무원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2020.3.4 (사진=연합뉴스)
좁은 방안에서 코로나19 버티는 노인
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노인이 음식과 마스크를 들고 온 구청 노인복지과 공무원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2020.3.4 (사진=연합뉴스)

"6호 노인에게 무슨 일 났소?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죠."

도시락을 배달하고 떠나는 구청 직원이 탄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할머니는 다시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밖에서 놀란 토끼 눈을 뜨며 방금 다녀간 아파트 호실 할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했다.

광주에서 지난달 4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 한 달 동안 여간해서는 바깥 활동을 하지 않은 취약계층 노인들은 이렇게 날마다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며 버티고 있다.

4일 광주 북구청 노인복지과 직원들과 함께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임대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몸이 불편해 복지관에서 간편식을 받아 갈 수조차 없는 노인들이 다수 살고 있다.

박평달(79·가명) 할아버지도 지자체와 복지관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 중 한명이다.

박 할아버지는 도시락과 간편식, 마스크를 챙겨온 구청 직원들을 방안으로 불러 앉혔다.

할아버지는 민얼굴로 손님을 맞았다가 '아차'하는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고, 꼬깃꼬깃하고 손때가 탄 마스크를 집어쓰려 했다.

"에고 할아버지 그건 버리고 이걸 쓰세요."

그는 새 마스크를 씌워주는 공무원의 손길에 기대 하얀 마스크를 소중한 듯 감싸 쥐었다.

새마스크 쓰는 할아버지 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노인이 구청 노인복지과 공무원이 준 새 마스크를 쓰고 있다. 2020.3.4 (사진=연합뉴스)
새마스크 쓰는 할아버지
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노인이 구청 노인복지과 공무원이 준 새 마스크를 쓰고 있다. 2020.3.4 (사진=연합뉴스)

방 안 구석 가스레인지 위에는 요리한 지 오래된 듯 먼지 쌓인 냄비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싱크대 위에는 오래돼 시들해진 배춧잎이 그릇에 담겨있었다.

박 할아버지는 이틀 전 감기 증상으로 병원으로 찾았다가 코로나19 의심 환자로 분류돼 검사를 받았다.

'음성' 판정을 받고 안도했지만, 할아버지의 바깥 활동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밥은 잘 먹고 계시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세상에 이래도 밥을 굶겠냐"고 반문하고는 "그래도 밖에 나가 친구들과 복지관에서 따뜻한 밥 한술 뜨는 게 소원이다"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의 70대 할머니는 오랜만에 보는 사람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는 마스크를 건네는 직원 손을 붙잡으며 "이 귀한걸…"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니도 "배고픔과 두려움보다 힘든 것은 외로움"이라며 갈길 바쁜 지자체 공무원과 복지관 직원을 앉혀 놓고 연신 이야기꽃을 피웠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광주에서만 한 달째 이어지면서 지자체도 고민이 깊다.

복지시설과 급식소 폐쇄가 장기화하면서 "제발 문을 열어달라"는 민원이 폭주해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시점 하루 다시 문을 열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녀들의 '위험하다'는 항의가 반대로 이어졌다.

하루 문을 다시 연 지역 내 급식소에는 평소보다 120%가량 많은 노인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다시 확진자가 나오면서 복지시설 운영재개는 하루 만에 끝이나 노인들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간편식 받는 취약계층 노인 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이 간편식을 받고 있다. 2020.3.4 (사진=연합뉴스)
간편식 받는 취약계층 노인
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이 간편식을 받고 있다. 2020.3.4 (사진=연합뉴스)

복지기관과 지자체가 취약계층에게 공급하는 음식도 수급이 어렵다.

복지 식사비 지원금은 3천원 정도인데, 대부분 도시락 공급 단가가 그 이상이다.

북구는 겨우 3천500원 단가의 도시락 납품업체를 구하고, 500원 단가를 낮추려고 직접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부족한 라면 등 간편식은 후원에 기대고 있고, 반찬도 지역 단체의 기부로 버티고 있다.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어 취약계층에게 공급할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조달을 통한 마스크 공급이 어려워지자, 북구는 부서별로 마스크 공급 업체를 찾아다니며, 취약계층에게 공급할 마스크를 수의계약 형태로 확보하고 있다.

광주 북구청 최웅철 노인장애인복지과장은 "코로나19로 음식은 물론 마스크까지 수급이 어려워 부서별로 필요한 물량을 자체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상황이 이러다 보니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어 모든 부서가 각개전투 형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스크 건네는 구청 직원 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북구청 노인복지과 직원이 취약계층 노인에게 마스크를 건네고 있다. 2020.3.4 (사진=연합뉴스)
마스크 건네는 구청 직원
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북구청 노인복지과 직원이 취약계층 노인에게 마스크를 건네고 있다. 2020.3.4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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