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IMF 때보다 더 힘들어"…삶도 뒤흔드는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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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IMF 때보다 더 힘들어"…삶도 뒤흔드는 코로나19
  • 연합뉴스
  • 승인 2020.03.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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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 일감 끊긴 전통시장·근로자대기소 '깊은 한숨'
휴업의 일상화로 실직한 가장…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상
코로나19에 손님 끊긴 전통시장 5일 광주 동구 남광주시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상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손님 발길이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에 손님 끊긴 전통시장
5일 광주 동구 남광주시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상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손님 발길이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사진=연합뉴스)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팔아야 만원, 이만원 손에 쥐어요."

광주 동구 남광주시장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채소를 파는 이영숙(61) 씨는 5일 "IMF 외환위기 이후 지금처럼 먹고살기가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장이 파하는 오후면 남광주시장에서 약 60㎞ 떨어진 전남 보성군 득량면 산지까지 트럭을 몬다.

버섯, 감자, 대파 등 이튿날 시장에 내놓을 채소를 싣고 오는 왕복 기름값만 1만5천원 남짓이다.

새벽밥을 지어먹고 아침 6시쯤 나와 장사를 시작하는데 주차비와 이런저런 부대비용을 제하면 푼돈이 남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한 달 가까이 되풀이 중인 이씨의 일상이다.

이씨는 "우리야 자식들 다 키워놨지만 젊은 사람들 살기가 큰일이다"고 되려 남 걱정부터 했다.

이씨 옆에서 고사리와 토란대를 파는 노파도 한마디 거들었다.

'장사가 안됩니다' 5일 광주 동구 남광주시장 상인이 모닥불 주변에 앉아 새벽 추위를 견디고 있다. 상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손님 발길이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사진=연합뉴스)
'장사가 안됩니다'
5일 광주 동구 남광주시장 상인이 모닥불 주변에 앉아 새벽 추위를 견디고 있다. 상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손님 발길이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사진=연합뉴스)

"테레비에서 여름이면 바이러스가 다 죽는다던데 그 전에 우리가 굶어 죽게 생겼어."

이 노파는 코로나19보다 불황이 더 무섭다고 푸념했다.

전통시장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주말에는 제법 손님이 들어찼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람 구경이 쉽지 않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여느 때였다면 바지런한 손님이 한창 모여들 오전 7시 무렵이 지나도 과일, 해산물, 반찬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좌판마다 상인들뿐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짙어지는 서민의 한숨은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근로자대기소에서도 마주할 수 있었다.

광주 서구 한 지하철역 인근 근로자대기소에서 이날 동트기 전 만난 A(54) 씨는 "지난주 이틀밖에 일하지 못했다"며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A씨는 "원래 일이 많지 않은 시기이긴 해도 지금은 너무 살기가 팍팍하다"며 "일주일에 사나흘 일하면 로또 맞았다고 축하받는 상황"이라고 애써 쓴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일할 수 있을까요' 5일 광주 서구 한 근로자대기소에서 근로자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일감이 절반가량 줄었다. (사진=연합뉴스)
'오늘은 일할 수 있을까요'
5일 광주 서구 한 근로자대기소에서 근로자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일감이 절반가량 줄었다. (사진=연합뉴스)

대기소는 일당 13만원 안팎의 일자리를 소개하고 수수료로 10% 상당을 근로자로부터 받는다.

오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일자리 소개 성패가 결정 난다.

요즘 같은 때는 하루 20명 남짓 대기소를 찾아오는데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돌아가는 일꾼이 대다수다.

예년과 비교해 일감이 어느 정도냐는 물음에 대기소 소장 손모(70) 씨는 "절반 정도로 확 줄어든 것 같다"고 답했다.

손 씨는 "광주가 이 정도인데 대구는 오죽하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전국을 뒤덮은 코로나19 공포는 소시민의 일상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 강사 B(34)씨는 휴업의 일상화로 일자리를 잃었다.

원장은 휴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고, 수업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기존 강사를 전부 고용한다는 약속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코로나19 사태로 학원도 휴업(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코로나19 사태로 학원도 휴업(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화벨이 울리는 때만 기다리며 마냥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일주일을 훌쩍 넘겼다.

다른 일자리도 찾아보고 있으나 아직 연락 오는 곳은 없다.

내달 아들이 태어나고 아빠가 되면 B씨는 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외벌이 가장이다.

B씨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도, 차상위계층도 아니라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며 "코로나19에 걸려서 생계비라도 지원받아야 하나 싶다"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출 상환과 공과금 납부 안내 문자메시지가 역병보다 두렵다고 B씨는 토로했다.

B씨는 "에어컨을 떼어 팔거나 대출을 더 받아 생계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며 "실직 기간 늘어간 빚이 평생을 옥죌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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