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로나19'에 갈 곳 없는 아이들…애타는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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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코로나19'에 갈 곳 없는 아이들…애타는 부모들
  • 연합뉴스
  • 승인 2020.03.0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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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미뤄지며 울며 겨자 먹기로 돌봄시설 위탁
사회복지사도 대면 접촉 피해야 해 '찾아가는 복지'도 중단
지역아동센터에서 간식 먹는 아이들 5일 오후 광주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어린이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 2020.3.6 (사진=연합뉴스)
지역아동센터에서 간식 먹는 아이들
5일 오후 광주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어린이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 2020.3.6 (사진=연합뉴스)

"밥 차리는 게 귀찮으면 안 먹을 때도 많아요."

광주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13살 승헌(가명)이는 끼니를 거르는 게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얼굴의 승헌이가 스스로 저녁을 차려 먹는 건 일상이 됐다.

홀로 자신과 동생을 키우느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버지는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다.

코로나19로 갈 곳 없이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승헌이와 동생은 아버지가 냉장고에 넣어놓은 차가운 밑반찬에 밥을 챙겨 먹었다.

한 살 터울의 어린 동생도 밥을 챙겨주냐는 물음에 "동생도 자기가 알아서 먹어요"라고 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건 승헌이 형제에겐 익숙한 일이 됐다.

투정을 부릴 만도 하지만 승헌이는 의젓하게 "괜찮다"고 짧게 답했다.

그나마 지역아동센터에서 정성껏 지은 따뜻한 점심 한 끼가 있어 다행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학이 미뤄져 '강제 방학'을 이어가고 있는 승헌이는 아침이면 동생과 함께 지역아동센터로 나온다.

지역아동센터도 마찬가지로 휴관을 해야 하지만, 승헌이처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외면할 순 없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 긴급돌봄 5일 오후 광주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어린이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0.3.6 (사진=연합뉴스)
지역아동센터 긴급돌봄
5일 오후 광주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어린이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0.3.6 (사진=연합뉴스)

승헌이와 동생 외에도 5명의 아이가 센터 문을 열자마자 학교 대신 이곳을 찾아 시간을 보냈다.

외부인 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소 진행하던 음악, 미술, 영어 등 외부 강사가 찾아오는 특별활동은 전면 중단했지만, 길어진 방학에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겐 그나마 휴식처다.

중학생 서주호(가명·14)군은 "집에만 있으면 말을 나눌 사람이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힘들다"며 "그나마 센터에 나와 형·동생들과 함께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렇게 광주 308개 지역아동센터에서 긴급 돌봄을 하는 아이들은 하루 평균 380여명.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아이를 공동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부모의 마음도 편치 않다.

한 부모는 생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죄짓는 기분"이라고 했다.

광주의 한 지역아동센터장은 "부모님들은 코로나19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제 활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센터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많다"며 "최대한 안전하게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돌봄 시설 맡겨진 아이들 5일 오후 광주의 한 어린이 돌봄시설에서 어린이들이 야외활동을 하고 있다. 2020.3.6
돌봄 시설 맡겨진 아이들
5일 오후 광주의 한 어린이 돌봄시설에서 어린이들이 야외활동을 하고 있다. 2020.3.6 (사진=연합뉴스)

그나마 지역아동센터에 나오는 아이들은 국가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나은 편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7살 지아(가명)는 지체 장애가 있는 엄마와 함께 온종일 집 안에서만 머물고 있다.

유치원을 졸업해 더는 유치원 긴급 돌봄을 받지 못하는 데다 초등학교는 개학을 연기했다.

그렇다고 지역아동센터에 보내기엔 코로나19 감염이 불안하다고 했다.

다행히 끼니는 인근 복지관에서 주는 결식아동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다.

결식아동 도시락 5일 오후 광주 남구 한 사회복지관 관계자가 결식아동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열어보고 있다. 2020.3.6 (사진=연합뉴스)
결식아동 도시락
5일 오후 광주 남구 한 사회복지관 관계자가 결식아동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열어보고 있다. 2020.3.6 (사진=연합뉴스)

평상시라면 복지관 직원이 직접 도시락을 가져다주며 안부도 묻고, 실생활도 들여다봤을 테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면 접촉을 피하라는 지침 때문에 도시락을 현관문 앞에 걸어두는 것이 전부다.

아이가 끼니마다 밥을 잘 챙기고 있는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이른바 '찾아가는 복지'도 중단된 셈이다.

사회복지사들은 깨끗하게 비워진 전날의 도시락통을 회수하며 지아 가족의 안부를 짐작하거나, 종종 거는 전화 건너편에서 들여오는 지아 어머니의 목소리로 안부를 확인할 뿐이다.

어른들의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고학년 아이들은 끼리끼리 놀이터로, pc방으로, 학원으로 향했다.

광주에서는 전체 학원 4천741개 가운데 14%도 채 되지 않은 650여개 학원만 휴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광주 남구 한 사회복지사는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취약계층보다 그 경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가정이 오히려 더 힘든 상황일 수 있다"며 "주위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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