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내 번호 어떻게 알았지?"…선거문자 발송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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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내 번호 어떻게 알았지?"…선거문자 발송의 비밀
  • 연합뉴스
  • 승인 2020.04.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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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것 아냐…후보자 개별적으로 입수
선거법에 입수경로 규정 없어…개인정보 불법거래 소지 커
"브로커통해 대리·택배업체 종사자에게서 입수하기도…상대 후보가 건네주기도"
이름없이 전화번호만 입수해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해당
4 · 15 총선 5개 정당 구도 (PG)
4 · 15 총선 5개 정당 구도 (PG)

4·15 국회의원 선거(총선)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2일 시작되면서 유권자들이 쏟아지는 선거운동 문자메시지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이 허용한 선거운동 방법 중 하나인 '선거문자 발송'은 비교적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어 후보자들이 애용하는 선거운동 방법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유권자를 직접 접촉하는 방식의 선거운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문자 선거운동'의 중요성이 이번 선거에선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선거문자에 유권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선거법상 선거문자는 유권자 한 명에게 8번까지만 발송할 수 있지만, 출마한 후보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하루에도 수통의 문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

타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자까지 무분별하게 선거문자를 보내는 사례도 많아 일각에선 후보자들이 개인정보인 휴대전화 번호를 불법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후보자들의 전화번호 입수에 대해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된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경기도 시흥에 사는데 서울에서 출마한 후보자로부터 선거문자가 왔다. 내 번호를 도대체 어떻게 입수한 것인지 모르겠다"라거나 "선거관리위원회나 각 지자체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법적인 방법으로 전화번호를 입수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 21대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일 서울 시내 거리에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2020.4.2 (사진=연합뉴스)
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돌입
21대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일 서울 시내 거리에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2020.4.2 (사진=연합뉴스)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일단 선거관리위원회나 각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유권자 전화번호를 후보자에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법은 선거문자를 발송하는 선거사무소의 전화번호를 선관위에 반드시 등록하도록 한다. 반면 문자를 발송받을 전화번호와 관련해서는 입수방법이나 등록여부 등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각 후보자별로 알아서 입수하라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선거문자를 어디에 발송할 것인지는 선관위의 관리·감독 사항이 아니다"며 "선거법에 따라 선거문자를 발송할 전화는 1대만 사용해야 하는데 그 전화번호만 선관위에 등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후보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지역 유권자 전화번호를 입수하는 것일까? 선거캠프에서 문자발송 업무를 하는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전화번호 입수 과정에서 불법이 이뤄질 소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중진급 다선 국회의원 보좌관인 A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오랫동안 한 지역구에서 당선한 의원들은 지역 유지들과 단체 등을 통해 입수한 대량의 유권자 전화번호를 갖고 있다"며 "예전에 거주했던 지역구의 후보자에게서 선거문자가 오는 것도 해당 후보자가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기존 전화번호 목록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화번호가 없는 의원들은 브로커를 통해 대리기사업체 관계자나 택배업체 관계자로부터 입수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지역구를 돌며 주차된 차에 붙은 전화번호를 입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불법적인 개인정보 수집에 해당할 소지가 큰 경우들이다.

공천에 탈락한 정치인이 상대 당 후보자에게 전화번호를 통째로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A씨는 "공천에 탈락한 정치인은 자신의 지역구에 당내 라이벌을 남겨두지 않고 싶어한다"며 "이때문에 오랜 지역구 활동으로 입수한 유권자 전화번호를 상대 당 후보자에게 기꺼이 주는 사례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유출 (PG)
개인정보유출 (PG)

문제는 이런 식으로 당사자 동의를 받지 않고 전화번호를 건네받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선거법이 선거문자 발송을 허용하고 있지만, 불법으로 입수한 전화번호에 발송했다면 불법선거운동 혐의를 받을 여지도 있다. 선거법은 법에서 규정한 방법으로만 선거운동을 하도록 하고, 규정된 방식 외에는 모두 불법 선거운동으로 취급한다.

때문에 후보자들은 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체로 이름과 주소 등 다른 개인정보는 없이 전화번호만 기재된 자료를 입수하고 있다. 전화번호만으로는 개인을 특정할 수 없으므로 보호가치가 있는 개인정보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또 선거문자 말미에 수신거부 방법도 함께 고지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법만으로는 법 위반 혐의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전화번호만 기재된 자료도 보호할 가치가 있는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와 함께 '개인정보보호 포탈' 사이트를 운영 중인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전화번호만으로도 개인 식별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전화번호 자체가 개인정보보호법 보호대상인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입수한 전화번호로 문자를 발송한 이상 수신거부 방법을 고지했더라도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원의 오지헌 변호사도 "언제든지 해당 전화번호로 전화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화번호도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실질적으로 보호가치가 있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당사자 동의 없이 입수하면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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