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기행] 50년 된 서민 한정식집…전남 강진 설성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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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기행] 50년 된 서민 한정식집…전남 강진 설성식당
  • 연합뉴스
  • 승인 2020.04.1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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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으로 내려간다고 하니 지인이 아주 유명한 한정식집을 추천했다.

한방을 재료로 한 한정식이라는데, 알아보니 기본이 4인 기준이라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생각을 바꿔 서민들이 쉽게 올 수 있는 맛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강진에는 연탄 돼지 불고기가 주메뉴인 50년 된 한정식집이 있었다.

◇ 전라도 한정식은 '서강진 동순천'

전라도 한정식과 관련해 '서강진 동순천'이라는 말이 있다.

서쪽은 강진이요 동쪽으로는 순천이라는 말로, 그만큼 두 지역은 예로부터 해산물을 비롯한 음식 재료가 모이는 곳이었다.

신선한 재료는 맛의 보증수표다. 강진군 병영면은 조선 시대 전라남도의 병영(兵營)이 있던 곳이다. 병영은 조선 시대 각 도의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된 기지로, 병마절도사가 주둔해서 그 지역의 군사 업무를 보던 곳이다.

사람이 몰리다 보니 음식문화도 자연스레 발달했다.

취재 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가게로 들어섰는데 주방 옆의 작은 방으로 안내한다. 열린 틈으로 주방을 봤는데 모두 마스크를 한 채 조리하고 있다.

안내된 방으로 가서 방문을 여니 한 가족이 밥상에 앉아 식사 중이었다. 내가 앉아 먹을 밥상은 없었다.

설성식당 연탄 돼지 불고기
설성식당 연탄 돼지 불고기

'왜 밥상도 없는 방으로 안내를 했을까' 쭈뼛거리고 있는데 마침 식사를 마친 가족이 일어섰고, 종업원은 남은 반찬을 국그릇에 모두 모아 치웠다. '한정식집 음식 재활용'에 대한 의심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집 메뉴판은 간단하다. 1인분 1만원. 그것이 끝이다. 연탄 돼지 불고기가 나오는 한정식 한 상이다.

주문한 지 5분쯤 지났을까. 종업원 2명이 문을 연 뒤 잘 차려진 밥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 종업원들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 종업원들

이렇게 밥상을 날라 주니 왠지 느낌이 황송하다.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50년 넘게 이런 식으로 영업해오고 있다고 한다.

밥상을 받고 톳무침을 한 젓가락 입으로 가져갔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다에서 막 건져낸 것처럼 신선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봄을 맞아 출하되기 시작한 취나물과 참나물도 신선했다.

◇ 주연 같은 조연…맛깔스러운 젓갈들

연탄 돼지 불고기에서 특이한 점은 느끼지 못했다. 익히지 않은 양파가 돼지 불고기 위에 흩뿌려져 나오는데, 양파가 돼지 불고기 맛을 살려준다. 무난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의외로 인상적인 것은 토하젓이었다. 토하젓은 전남 지역의 민물에서 잡은 민물새우인 토하를 소금에 절여 담근 젓갈이다.

꽁보리밥을 먹고 체했을 때 밥 한 숟가락에 토하젓을 얹어 먹으면 쑥 내려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토하젓은 강진에서 만든 것이 가장 유명하다. 조선 시대 궁중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명성을 크게 얻었다.

신선한 톳무침
신선한 톳무침

갈치속젓도 나왔는데, 토하젓만큼 맛깔스럽다. 갈치속젓은 갈치가 잡히는 봄에 내장을 꺼낸 뒤 소금을 넣고 버무려 항아리에 담가 숙성시킨 것이다. 풋고추와 다진 파가 들어가 있다. 이것 역시 기막힌 맛이었다.

이쯤 되면 주메뉴와 부메뉴를 구별할 수 없다.

상추에 돼지 불고기를 얹은 뒤 갈치속젓을 얹고 쌈을 싸 먹어봤는데 상큼한 상추와 돼지 불고기가 갈치속젓과 어우러진 맛이 아주 그만이다.

굴비도 함께 나온다. 요즘 굴비라는 이름으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것은 사실 중국산 부세인데, 잘 보면 크기도 굴비보다 크다.

그런데 이것은 진짜 굴비였다. 바싹하게 구운 굴비 맛이 제대로다. 머리까지 먹어치웠다.

김윤자 대표는 45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온 이모로부터 5년 전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연탄 돼지 불고기와 굴비, 토하젓 등이 어우러진 기본 밥상
연탄 돼지 불고기와 굴비, 토하젓 등이 어우러진 기본 밥상

김 대표가 큰 찜통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다. 황칠나무라고 한다. 물맛이 색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황칠나무를 끓인 물이었다.

가게를 나서니 주변에 수인관 등 유명한 다른 연탄 돼지 불고깃집이 여럿 보인다.

강진군은 전라남도의 지원을 받아 이곳 병영면에 음식문화 거리를 조성 중이다. 삶은 고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식당과 숙성 돼지고기를 다루는 음식점 등이 들어선다고 한다. 병영면을 또 와야 할 핑계가 생겼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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