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 내동리 쌍무덤서 '마한시대 금동관(편)' 출토
상태바
전남 영암 내동리 쌍무덤서 '마한시대 금동관(편)' 출토
  • 백옥란 기자
  • 승인 2020.04.23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제 강점기 나주 신촌리 금동관 이후 100여년 만에 처음 출토

전남 영암군은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발굴조사 중인 지방기념물 제83호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서 국보 제295호로 지정된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매우 흡사한 금동관(편)이 출토됐다고 23일 밝혔다.

내동리 쌍무덤 출토 금동관(편)
내동리 쌍무덤 출토 금동관(편)

이번 금동관 출토는 일제강점기 나주 신촌리 금동관 출토 이후 마한시대 금동관으로는 100여년 만에 처음 출토되어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해당 금동관(편)은 지난해 7월 영산강유역 마한 최고 수장층으로 확인됐던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서 당시 금동관에 장식된 유리구슬, 영락(瓔珞)과 금동관 조각들이 확인돼 관련 학계와 세간에 큰 이슈가 된 이후 추가 발굴조사가 이뤄지는 과정 중 출토됐다.

이번에 출토된 금동관(편)은 금동대관 둥근 테의 앞쪽과 양측면에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을 세운 형태로서 줄기 위에 커다란 꽃봉오리를 만들고 그 좌·우가지에 2개의 꽃봉오리를 비스듬하게 배치했다.

그 아래에는 2단의 가지를 좌우대칭으로 뻗게 했는데 아래에서 두 번째의 가지는 매우 작게 표현됐다.

또 꽃봉오리 중앙에는 연꽃무늬로 표현했고 최상단에는 유리 구슬을 장식했다.

쌍무덤 출토 금동관은 5세기말에서 6세기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그 형태가 매우 비슷한 점에서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최고의 위세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 안치된 피장자의 지위나 권위는 당시 전남지역 고대 마한사회의 최고의 귄력자로 추정된다.

영암 내동리 쌍무덤 매장주체부 전경
영암 내동리 쌍무덤 매장주체부 전경

한편, 전남지역 452개소 마한고분군 중 영암군에 분포된 고분군은 약 41개소가 밀집돼 있고, 그 중 20여기의 고분군이 영암 내동리 쌍무덤 주변에 분포하고 있어 이 지역에 마한시대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영암 내동리 쌍무덤은 5세기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고분으로 학계에서 보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금동관 이외에 일본고분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동물모양 토기 등이 무덤 주변 도랑(주구)에서 출토되고 있어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국내·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 것으로 본다.

전동평 영암군수는 "이번 발굴성과를 바탕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해 고분의 성격을 규명하고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보존할 예정"이라며 "고분군의 보존정비와 장기적인 종합정비 계획도 세워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