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치닫는 남북관계…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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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치닫는 남북관계…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 연합뉴스
  • 승인 2020.06.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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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한반도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과거 '서울 불바다설'까지 소환하고 나섰을 정도다. 북한은 2인자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담화를 통해 '북남관계의 총파탄'을 공언한 이후 2주간 극단적 조치들을 이어가고 있다. 9일엔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며 모든 연락채널을 차단했다. 16일엔 개성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고, 17일엔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에 군부대를 다시 주둔하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김정은 남북 정상의 2018년 4·27 판문점선언과 9·19평양선언을 시작으로, 2007년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의 10·4 평양선언, 2000년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의 6·15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공들여 쌓은 남북 화해 협력의 탑을 허무는 조치들이다. 시간을 되짚으며 역순으로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20년 역사를 지워나가는 모양새다. 이는 남북 간 합의의 일방적 파기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 남북 모두에 고통을 주는 자해 행위임을 북한도 잘 알 것이다. 더는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길 촉구한다.

연일 쏟아내는 북한의 대남 비난 발언들도 사납기 그지없다. 처음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미온적이라고 비난하는 수준이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공식·비공식 매체를 통해 당국자·비당국자 가리지 않고 문재인 정부를 '사상 최악의 무지 무능 정권'이라고 막말을 퍼붓고 나섰다. 급기야는 김 제1부부장이 남북합의 이행을 약속하면서 현 상황을 소통·협력으로 풀자는 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메시지를 대놓고 모욕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는 '철면피한 감언이설'이란 제목의 담화에서 "사죄와 반성, 재발방지 다짐은 없고 변명과 술수로 범벅된 미사여구만 있었다"고 했다. 북한의 책임 있는 2인자의 발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렇게 '최고존엄'을 소중히 여긴다면, 남한의 '국가원수'에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위로 규정하고, 더는 참지 않겠다는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경고는 응당하다. 특히 북한은 난국 타개를 위한 문 대통령의 비공개 대북 특사 파견 제안을 "간청했다"고 왜곡하며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외교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지만, 난국 타개의 실마리는 우리 정부를 향한 북한의 불만에 담긴 핵심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2년여전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프로세스가 개시됐고, 자신들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등을 포함해 남북 간, 북미 간 긴장 완화와 비핵화를 위해 나름 성의를 보였으나, 유엔 제재는 완화되기는커녕 기약조차 없다는 절망감에서 이번 일이 비롯된 측면이 짙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 남한 정부가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 이전에 제재 완화마저도 꺼리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견인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세월만 보냈다는 원망이 켜켜이 쌓인 듯하다. 남한 정부가 "2년간 한미동맹만을 우선시해왔다"(김여정)거나, '무맥무능한 정권'(조선중앙통신), '지식과 상식·주견·결단력·도덕·능력 등이 모두 무(無)인 남측'(우리민족끼리TV), "실천은 한 걸음도 내짚지 못하는 상대"(장금철 통일전선부장) 등의 비난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촛불정권이라서 기대했는데 진전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힐난인 셈이다.

그동안 즉각적 대응을 자제하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던 청와대는 김 제1부부장의 문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언사와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공식화를 계기로 비상하고 단호한 스탠스로 바뀌었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데서도 비장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방부는 "군사도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고, 여야 정치권도 북측의 폭주를 비판하며 강력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북한의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북한도 남북관계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추가 행동은 삼가야 한다. 일단은 남과 북 모두 마음을 가라앉힐 때다. 차제에 우리는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은 북한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적당히 현상유지를 하며 '분리'돼 사는 불편한 이웃인지, 언젠간 무너뜨려야 할 '주적'인지, 아니면 70년 넘는 분단을 극복하고 더불어 어울려 살아야 할 형제인지 말이다. 강력한 제재 하의 현상유지는 북한에 희망고문인 측면이 있다. 최근 일련의 충격적 조치들은 현상을 타파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정부는 북한이 추가로 도를 넘는 행동을 한다면 단호히 대처하되, 이와 별도로 대북전단살포금지법(가칭)의 신속한 입법을 시작으로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남북문제와 관련해서 때론 '우리가 선조치하고 미국과는 사후협의'하는 과감한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 남북 모두 서로 소홀함이 없었는지 성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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