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승리] 29세 상원 당선서 최고령 대통령까지…역경딛고 꿈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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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승리] 29세 상원 당선서 최고령 대통령까지…역경딛고 꿈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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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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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의원 36년·부통령 8년 관록의 '엉클 조'…케네디 보며 대망 키워
대권 도전 삼수 끝 마침내 성공…당내 경선서도 초반 위기 겪다 역전극
여론조사 트럼프에 줄곧 앞서며 승리…이면엔 애절한 가족사 극복 스토리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연합뉴스]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에 이어 대통령까지.

대선 승리로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오르게 된 조 바이든 대선후보는 반세기 동안 공직 생활을 해온 민주당의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는 풍부한 경험과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대권 3수' 끝에 마침내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누구와도 쉽게 비교되지 않는 '관록'의 바이든은 정치 '이단아'로 불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있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어 '조 아저씨'라는 뜻의 '엉클 조'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이런 그가 이끄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끈 지난 4년과는 확연하게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 존 F 케네디 보며 꿈 키운 '흙수저' 출신

1942년 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그는 올해 77세로, 내년 1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취임식 기준으로 미 역사상 역대 최고령(78세) 대통령이 된다. 종전 기록은 70세 7개월이 되는 달에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자동차 영업사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스스로 넉넉하지 않은 집안 환경에서 시작(Humble Beginnings)했다고 표현하는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다.

어릴 때 펜실베이니아에서 자랐지만, 10살 때 부친이 실직해 인근 델라웨어주로 이주하면서 델라웨어가 '제2의 고향'이 됐다.

하지만 청소년기부터 그는 당시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보면서 큰 꿈을 키웠다.

바이든 후보는 선거운동 웹사이트에서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에 많은 이가 "나라를 바꾸고 있었다"면서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존 F. 케네디, 로버트 케네디 등을 예로 들고 "나는 그들의 웅변, 신념, 상상할 수 없는 꿈의 순전한 크기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이미 당시부터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동경하며 '큰 꿈'을 키워왔다는 고백인 셈이다. 그 꿈은 수십 년 뒤 결국 현실이 됐다.

바이든 후보는 델라웨어대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했고 이후 시러큐스대 로스쿨에 진학해 졸업한 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 20대에 상원의원 당선에서 최고령 대권 고지까지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1970년 뉴캐슬 카운티 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72년(만 29세)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해 공화당 현역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미 역사상 5번째로 젊은 나이에 당선된 것이자 현대 미국에서는 최연소 기록이었다. 이듬해 1월 30세의 나이로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바이든은 내리 6선을 기록하며 36년간 활동했다. 변호사 경력을 살려 상원 법사위원장을 지냈고 외교위원회로 옮긴 뒤에는 외교위원장을 세 차례 역임, 외교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의정 활동 기간에 여성폭력방지법과 기후변화 대처 법률 제정을 주도했으며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대응 등과 관련한 입법에도 힘을 쏟았다.

1988년에는 두 차례 입원해 뇌 동맥류 수술을 받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미시간주 동반 유세에서 팔꿈치 인사하는 바이든과 오바마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열린 드라이인 유세에 함께 나서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플린트 로이터=연합뉴스)
미시간주 동반 유세에서 팔꿈치 인사하는 바이든과 오바마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열린 드라이인 유세에 함께 나서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플린트 로이터=연합뉴스)

대권 도전은 이번이 3번째였다.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낙마했고, 2008년 다시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돌풍에 밀려 좌절됐다.

그러나 외교정책 분야를 중심으로 한 실력을 인정받아 오바마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돼 당시 행정부에서 8년 간 부통령을 지냈다.

그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준비했지만 2015년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사망하자 슬픔에 빠져 결국 출마의 뜻을 접었다.

장남은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낸 인재로, 현직 시절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지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와도 친분이 있다.

이번 대선의 경우 바이든 당선인은 '대세론'을 구가하며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초반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연패하는 극심한 부진으로 대권 도전이 무산될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백인 중심 지역을 벗어나 흑인과 라티노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된 전국 각지 경선이 진행되면서 승기를 잡기 시작, 3월 '슈퍼 화요일' 대승으로 선두로 올라서는 대역전극을 이뤄내며 3수 끝에 마침내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꿰찼다.

1973년 1월 사고로 다친 어린 아들들이 입원한 델라웨어주 병원에서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하는 조 바이든 [AP=연합뉴스]
1973년 1월 사고로 다친 어린 아들들이 입원한 델라웨어주 병원에서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하는 조 바이든 [AP=연합뉴스]

◇ 화려한 정치 이력 이면엔 안타까운 가족사…두 아들 돌보며 '120마일 통근'

바이든 후보는 정치인으로 화려한 이력을 쌓으며 성공했지만 이면에 있는 안타까운 가족사(史)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1972년 11월 7일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한 달 뒤인 그해 12월 18일 교통사고로 아내 닐리아 헌터와 13개월짜리 딸 나오미를 잃었다.

아내와 딸은 바이든이 워싱턴에 나와있는 동안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오던 길에 변을 당했다. 차에 함께 탄 두 아들 보와 헌터는 골절상 등으로 크게 다쳐 입원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바이든은 당시 충격으로 의원직 사임까지 고려했지만, 주변의 만류로 위기를 넘기고 이듬해 아들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이후 두 아들을 직접 재우고 지켜보기 위해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워싱턴DC 의사당까지 120마일 거리를 기차로 매일 통근하는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그는 의정 활동에 매진하면서도 여동생 발레리와 가족의 도움을 받아 5년 동안이나 홀로 아들들을 보살폈다.

영어 교사였던 현 아내 질 바이든 여사와는 1977년 재혼해 딸을 얻었다.

백인 중에서 소수인 아일랜드계로 가톨릭 신자다. 역대 대통령 중 가톨릭 신자는 역시 아일랜드계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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