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공범 아닐까요" 스쿨존 가족 참변에 운전자들 자기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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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공범 아닐까요" 스쿨존 가족 참변에 운전자들 자기반성
  • 연합뉴스
  • 승인 2020.11.1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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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 번째 스쿨존 사고 발생 지점, 신호기 설치 등 뒤늦게 시설개선
뒷순위에 밀린 유치원·어린이집 스쿨존…처벌강화·시설개선 한계, 운전자 의식 개선 시급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반복 사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반복 사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화물차 기사가 잘못했지만, 사고 영상 보니 세 남매 가족 길 못 건너게 반대편 차로에서 쌩쌩 달린 차들이 바로 평상시 내 모습이네요. 우리도 공범이 아닐까 반성했습니다."

광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교통사고 장면을 접한 한 시민의 반응이다.

지난 17일 세 남매가 어머니와 함께 어린이집에 등원하려다 스쿨존에서 화물차에 치여 2살 여아가 숨지는 등 3명이 죽거나 다쳤다.

올해에만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어린이가 피해를 본 사고가 발생해 경찰과 지자체가 시설 개선에 즉각 돌입했다.

그러나 유치원·어린이집 스쿨존의 시설 개선은 초등학교의 뒷순위에 밀려 있고, 운전자 의식 개선 없는 처벌 강화와 시설 개선만으로는 제2, 제3의 민식이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 어린이보호구역서 가족 참변…1명 사망·2명 중상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 어린이보호구역서 가족 참변…1명 사망·2명 중상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세 남매와 어머니 '일단멈춤' 없는 횡단보도에서 참변

지난 17일 오전 출근길,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보호구역의 왕복 4차로 이면도로에는 제한 속도 시속 30㎞를 넘나드는 속도로 출근길 차들은 감속을 유도하기 위해 높이 쌓아놓은 '고원식' 횡단보도를 차량이 출렁이도록 내달렸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 잠시 멈춰선 30대 어머니, 4살 언니, 유모차에 탄 2살 여동생과 어린 막내 남동생 등 세 남매 가족은 차들이 멈춰 서 있는 틈에 조심스럽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나 횡단보도 중앙 부근에서 맞은편 차들이 멈추지 않고 쌩쌩 달리는 통에 한참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족을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앞 차가 가길 기다리며 멈춰 서있던 8.5t 대형 화물차가 그대로 밀고 지나갔다.

50대 운전자는 "차량 앞에 있는 가족들을 못 봤다"고 진술했다.

비록 실수이더라도 운전자의 잠깐의 부주의는 2살 여아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 아이의 언니와 어머니도 크게 다쳐 병원에서 힘겨운 치료를 받고 있다.

이곳의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불과 6개월 전인 지난 5월에는 같은 장소에서 7살 초등학생이 제한 속도를 어긴 SUV에 머리를 심하게 다친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몸 일부가 마비된 아이는 힘겨운 치료를 마치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다시 등교하는 첫날, 세 남매 가족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어린이보호구역 사고, 신발만 덩그러니 [연합뉴스 자료사진]
어린이보호구역 사고, 신발만 덩그러니 [연합뉴스 자료사진]

◇ 뒷순위에 밀린 유치원·어린이집 스쿨존 시설개선

지난 5월 사고가 난 곳은 인명피해 사고 이후 한차례 시설 개선을 거친 곳이었다.

없던 횡단보도가 생겨나고, 속도 감속을 유도하기 위해 고원식 횡단보도와 방지턱 등도 신설됐다.

그러나 주민 일부는 신호기(신호등)와 주정차 단속 카메라 설치도 요구했지만, 주변에 또 다른 신호등이 있고 설치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아 추진되지 못했다.

경찰 측은 "지난 5월 사고 이후 교통 영향 평가 등을 거쳤으나 신호기 설치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났다"며 "일부 주민들이 차량 소통 불편 등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어 당시에는 추진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번 두 번째 사고가 난 직후 설치가 어렵다던 신호기는 '사후약방문'이나마 설치되게 됐다.

광주지방경찰청 등 경찰, 광주시, 북구청, 도로교통공단 측은 사고 당일 현장에서 긴급 점검에 나서 ▲ 신호기 설치 ▲ 불법주정차 단속 카메라 신설 ▲ 주정차 금지 노면표시 ▲ 과속 방지턱 추가 등을 시행하기로 했다.

새롭게 만든 신호등이 두건의 사고가 이어진 사고 지점의 안전은 높이겠지만, 다른 유치원과 어린이집 인근 스쿨존은 사정이 여전하다.

광주에는 어린이 보호구역 589곳이 있는데, 초등학교 인근은 157개소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인근 스쿨존이다.

그러나 민식이법 시행 이후 시설 개선 사업은 대부분 초등학교 인근에만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광주 스쿨존 852개 횡단보도 중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곳은 455곳에 달한다.

대부분 초등학교 스쿨존은 100% 간선도로 주 출입문 횡단보도에는 신호기가 설치돼 있지만, 유치원과 어린이집 인근 스쿨존에는 신호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올해 49곳의 신호기를 신규 설치했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인근의 추가 설치로 유치원·어린이집 신설은 올해 하반기에 일부 추진됐다.

경찰 관계자는 "초등학교와 달리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폐원하는 사례가 잦아 예산 낭비 우려 탓에 신호기 설치 등 시설개선의 우선순위를 초등학교에 두고 있다"며 "민식이법 시행 이후 시설개선 추진 1단계도 끝나지 않아 초등학교 인근 스쿨존 개선에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인명 사고 낸 차량 [연합뉴스 자료사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인명 사고 낸 차량 [연합뉴스 자료사진]

◇ 처벌, 시설개선만으로는 한계…운전자 의식개선 '필요'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차량에 치여 숨진 김민식(당시 9세) 군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단속카메라나 과속방지턱, 신호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개정한 '도로교통법'과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두 법으로 구성됐다.

시설개선과 처벌강화가 민식의 두 축인 셈이다.

강화된 처벌 규정에 따라 구속된 피의자가 실형을 받는 사례도 나오고 있고, 각 지역의 시설 개선도 이어지고 있지만, 스쿨존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안전과 소통,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해 시설 개선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일선 관계자는 "처벌과 시설 개선만으로는 제2, 제3 민식이를 막는 데는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고의 경우도 화물차 부주의가 근본 원인이었지만, 횡단보도에서 '일단 멈춤' 하도록 하는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운전 습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신호기가 없는 횡단 보도에서 피해자들이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보행자 횡단보도에 진입했음에도 멈추지 않고 주행한 반대차로 주행 차량들 탓이었다.

실제 경찰은 사고 화물차 운전자를 구속하는 한편, 사고 당시 횡단보도에서 멈추지 않고 주행한 반대차로 주행 차량 4대와 불법 주정차한 어린이집 통학 차량 1대 등 총 5대 차량 운전자들도 출석 요구해 과태료 부과 등 처벌을 추진한다.

이번 사건을 목격한 한 시민은 "이 좁은 도로 스쿨존에서도 과속하고, 주정차해 사고를 유발하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며 "처벌과 시설 개선에 뒤따라 운전 법규를 스스로 엄격하게 지키는 운전자들의 의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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