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농의 아들' 도백·총리·집권당 대표까지…이낙연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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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농의 아들' 도백·총리·집권당 대표까지…이낙연 누구
  • 연합뉴스
  • 승인 2021.07.0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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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하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지난 4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서원구 CJB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행사 '국민면접'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발언하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지난 4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서원구 CJB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행사 '국민면접'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5일 대선 출사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이낙연(69) 전 대표는 언론인 출신으로, 도백, 국무총리, 5선 의원, 집권당 대표를 거치며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전남 영광에서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9년 동아일보에 기자로 입사, 정치부 기자로 잔뼈가 굵었다. 이후 도쿄 특파원, 논설위원, 국제부장으로 근무하는 등 언론에서 21년간 재직했다.

정치부 기자 시절 '동교동계'를 출입하면서 야당 지도자였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DJ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정계에 입문,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함평·영광에서 당선돼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을 했다.

그러나 대선 직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분당 당시 친노 세력이 주축이 된 열린우리당에 가지 않고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남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 속에서도 2004년 총선에서 당선돼 19대 국회까지 내리 4선을 했다.

초선 시절인 2001∼2002년 두 차례의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2002년 대선 때 선대위 대변인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등 다섯 차례에 걸쳐 '당의 입'으로 발탁돼 '5선 대변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촌철살인의 명(名)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2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대변인 시절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2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대변인 시절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4년 전남지사 선거에서 당선돼 도정을 이끌었으며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총리 재임 기간 안정감 있는 국정 보좌와 절제된 발언과 태도로 호평을 받았다.

모든 현안을 직접 꼼꼼하게 챙기면서 장·차관이나 총리실 간부들의 업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질책해 내각의 '군기 반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학과 기지가 뛰어나며 날카로운 분석력과 기획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도 많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야당 의원들의 매서운 질문을 달변으로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모습으로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고 퇴임한 후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였던 황교안 후보를 압도적 표 차로 누르고 당선, 5선 고지에 오르며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2019년 국무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국무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1대 국회 입성 후 민주당 코로나국난극복위원장을 맡아 당의 코로나19 대응을 지휘했고, 지난해 8·29 전당대회에서 6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돼 '180석 슈퍼 여당'의 지휘봉을 거머쥐었다.

당에 돌아와서는 민감한 현안에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 '엄중 낙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대선에 출마하려면 대선일 1년 전까지 사퇴하게 돼 있는 당헌상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지난 3월 9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상임선대위원장으로 4·7 재보선을 진두지휘했다.

당 대표 재임은 '대권주자 이낙연'에게 상처를 남긴 시간이기도 했다.

재보선 참패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서울·부산시장 후보 무공천 방침을 뒤집은 것이 '악수(惡手)'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신년 인터뷰 때 '사면 건의 발언'으로 여권 내 파장을 일으켰던 것도 실책으로 꼽혔다.

당권을 거머쥘 때만 해도 '어대후'(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낙연)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 대세론을 구가했지만, 당 대표 재임 기간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추격자의 입장이 됐다.

재보선 참패 후 문 대통령과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주변의 의견에 "문재인 정부에서 절반 이상을 2인자를 했는데 배신할 수 없다"며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말한 것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적자를 자임한 이 전 대표는 '반(反)이재명 연대'의 구심점을 확보, 반전 모멘텀을 살려내며 '이재명 대세론'을 꺾는 게 급선무로 꼽힌다.

유창한 언변과 안정감 있는 답변으로 전날 예비경선 국민면접 행사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한 이 전 대표는 "좋은 출발"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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