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참사 한 달] 애꿎은 생명이 대가 치른 '사회적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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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참사 한 달] 애꿎은 생명이 대가 치른 '사회적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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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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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계획서·감리 유명무실한 철거공사 이면에 재개발사업 복마전
버스정류장 방치하고 검증·감독 허점 드러낸 행정…재발방지책 봇물
추모발길 이어지는 철거건물 붕괴참사 합동분향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추모발길 이어지는 철거건물 붕괴참사 합동분향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철거건물 붕괴는 불운을 탓할 수 없는 사회적 참사였음이 입증되고 있다.

해체계획서와 감리 등 사고 위험을 줄이는 절차와 장치는 있으나 마나였고, 기간과 비용을 낮추는 무리한 공사 이면에서 재개발사업 복마전이 벌어졌다.

버스정류장 이설 권한, 재개발사업과 철거공사 감독 책임을 지닌 행정기관은 적극성을 보이지 못했다.

해체계획서와 다르게 진행된 철거 공사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해체계획서와 다르게 진행된 철거 공사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유명무실한 해체계획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감리자

8일 광주 동구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는 해체계획서를 지키지 않은 철거공사가 이뤄졌다.

현장에서는 지상 5층인 꼭대기부터 지하층까지 차례로 해체하는 작업 계획이 무시돼 중간층부터 나무 밑동을 도끼로 찍듯 철거가 시작됐다.

건물 사면을 기준으로는 좌, 후, 전, 우 순서인 계획이 지켜지지 않아 뒤편부터 파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됐다.

작업을 맡은 중장비도 건물과 일정 거리를 두고 쌓은 흙더미 위에 올리는 특수 장비 대신 상대적으로 비용이 싼 일반 굴착기가 투입됐다.

지상 5층짜리 건물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도록 구조를 무너뜨리는 철거가 사람, 자동차가 오가는 대로변에서 행해졌다.

공사 절차마다 안전을 점검해야 했던 감리자는 현장을 찾아가지 않았고, 작업일지조차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고자 건물 철거 때 안전 계획을 포함한 해체계획서의 허가, 감리자 지정을 의무화한 건축물 관리법을 지난해 제정했다.

하지만 학동 4구역 현장에서는 어느 하나 이행되지 않았다.

재개발사업 조합으로 향하는 '철거건물 붕괴참사' 경찰 수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개발사업 조합으로 향하는 '철거건물 붕괴참사' 경찰 수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 원칙 벗어난 공사·감리 이면에는 재개발사업 복마전

무모하고 상식을 벗어난 공사와 감리가 횡행한 배경으로는 재개발사업 복마전이 지목된다.

얽히고설킨 상납 구조 때문에 공사 업체가 기간 단축을 시도하고, 철거 감리자가 제 몫을 다 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불법 다단계 도급으로 철거 공사가 여러 업체를 거쳐 내려가 비용이 줄어든 계약 구조는 지금까지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붕괴 당시 건물을 철거했던 굴착기 기사는 맨 아래 도급업체의 대표였음이 드러났다.

감리자가 받은 용역비는 당초 견적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관련 수사 또한 진행 중이다.

해당 감리자를 임의로 지정한 공무원은 상급자였던 퇴직자로부터 청탁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됐다.

경찰 수사는 사고 직접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재개발사업 전반으로 향하고 있다.

사업 추진 주체인 재개발사업 조합을 둘러싼 총체적 의혹을 규명하는 경찰 수사가 책임자 규명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재개발사업 조합으로 향하는 '철거건물 붕괴참사' 경찰 수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개발사업 조합으로 향하는 '철거건물 붕괴참사' 경찰 수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정류장만 옮겼더라면…검증 더 철저했다면

이른바 '액셀' 발언으로 빈축을 산 여당 대표는 버스정류장 위치만 옮겼어도 사고 결과가 달랐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운 심정이 본래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결과론적인 해석이긴 하나 버스정류장을 대규모 철거 현장 옆에 존치한 행정은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다.

참사 이튿날 광주시와 동구는 공사장 주변 버스정류장을 임시로 옮기는 안전대책은 시공사 측 협조 요청이 선행돼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광주 시내 철거 현장 인근 버스정류장을 옮기는 조처가 즉각 이뤄지면서 절차보다는 안전불감증을 먼저 돌아봐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한 해체계획서를 승인한 행정의 전문성 부족도 아쉬움을 남겼다.

동구는 관련 전문가의 검증을 거치고도 세부 내용이 미흡했던 해체계획서가 허가받은 이번 사례를 통해 대안 마련에 나섰다.

국토안전관리원의 이중 검토, 전문가 검증이 부실할 경우 처벌 규정 신설 등 법령 개정 요청을 추진 중이다.

또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담당 공무원의 철거 현장 수시 점검을 시행하기로 했다.

'철거건물 붕괴참사' 희생자 발인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철거건물 붕괴참사' 희생자 발인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 애꿎은 생명이 치른 대가…재발방지책 봇물

광주 학동 4구역 철거건물 붕괴는 공사나 재개발사업과 관련 없는 시내버스 탑승자가 대가를 치른 사회적 참사다.

열여덟 고등학생, 아들 생일에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던 노모, 수술받고 요양 중이던 아내를 찾아가던 남편 등 9명이 이번 참사로 희생됐다.

생존한 8명은 버스 앞부분 승객과 운전기사인데 아름드리 가로수가 차체 전면부 충격을 줄여준 덕분에 기적처럼 목숨을 구했다.

국토교통부는 제도의 부족함보다는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도덕적 해이를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다.

국토부는 수사를 통해 드러난 법률 위반 행위에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이번 참사를 아픈 계기로 삼아 제도 미비와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재발 방지책 마련에 나섰다.

법규를 위반한 철거공사 책임자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진하고, 철거 현장서 버스정류장을 옮기며, 감리자 상주를 의무화하는 법안 등이 잇달아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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