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밟아 민주영령 추모…'전두환 비석' 얽힌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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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밟아 민주영령 추모…'전두환 비석' 얽힌 사연은?
  • 연합뉴스
  • 승인 2021.10.2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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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숙박 기념 비석 재야인사들이 부수고 기자가 묘역 가져다 놔
1989년 전남 담양군 한 마을에서 세운 '전두환 비석'을 부수는 모습[당시 전남일보 사진기자 신종천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89년 전남 담양군 한 마을에서 세운 '전두환 비석'을 부수는 모습
[당시 전남일보 사진기자 신종천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민주 영령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전두환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발로 밟도록 한 이른바 '전두환 비석'이 주목받는다.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거센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보란 듯이 이 비석을 밟고 지나가면서다.

특히 이 후보는 이 비석을 밟은 채 윤 전 총장을 향해 "(전두환을) 존경하는 분이라 밟기 어려우셨을 것"이라며 비꼬기도 했다.

이 비석은 현재 광주 북구 옛 망월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향하는 길바닥에 묻혀 참배객들이 밟고 지나가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비석 안내문에는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 달라'고 적혀있다.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전씨의 이름이라도 짓밟아야 민주화를 외치다 숨진 영령들 앞에 설 수 있다는 산 자의 울분과 부끄러움이 담겼다.

전두환 비석 밟는 이재명 "윤 후보는?"이재명(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2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며, 묘역 입구 땅에 박힌 전두환 비석을 밟고 서 있다. 이 후보는 주변에 "윤석열 후보도 여기 왔었느냐"고 물은 후 "왔어도 존경하는 분이니 (비석은) 못 밟았겠네"라고 말했다. 2021.10.22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비석 밟는 이재명 "윤 후보는?"
이재명(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2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며, 묘역 입구 땅에 박힌 전두환 비석을 밟고 서 있다. 이 후보는 주변에 "윤석열 후보도 여기 왔었느냐"고 물은 후 "왔어도 존경하는 분이니 (비석은) 못 밟았겠네"라고 말했다. 2021.10.22 (사진=연합뉴스)

이 비석은 1982년 3월 광주를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전남 담양군 고서면 한 마을에서 숙박한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마을 주민들의 주도로 '전두환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이라는 각인을 새겨 마을 입구 도로변에 세워놓았다.

이때 만들어진 비석은 현재 묘역에 묻혀있는 것보다는 더 큰 크기의 비석으로 전해진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씨가 정권에서 물러나자 그를 향한 분노를 참지 못했던 한 청년은 깊은 밤을 틈타 해머로 표지석 일부를 깨뜨려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3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의 행동으로 비석에 새겨진 전두환의 '전' 글자가 훼손되면서 마을에선 다시 비석을 제작했고, 그 소식은 다시 광주의 민주화운동 재야인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뜻을 함께한 재야인사 10여 명은 1989년 1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봉고차를 나눠타고 해당 마을로 향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을 인근에서 비석 등을 제조하는 석물 공장.

그러나 공장 관계자들은 그런 비석을 제작한 적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후 샅샅이 뒤져본 마을에서도 비석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마을 주민 한 명이 슬그머니 다가와 "낙엽과 짚단으로 비석을 숨겨놨다"고 귀띔해줬다.

전두환 비석 밟기[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두환 비석 밟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5·18 피해자나 유족 등이 비석을 훼손하러 올 것이라는 소문을 듣게 된 마을 사람들이 숨겨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을 다시 수색한 사람들은 공터에 쌓인 짚단과 낙엽 속에서 비석을 발견했고, 그 자리에서 곡괭이로 비석을 부숴버렸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당시 전남일보 사진기자 신종천 씨도 급히 현장을 찾아왔다.

재야인사들은 부숴버린 비석을 그대로 버려두고 떠나버렸지만, 신씨는 문득 이 비석을 망월 묘역에 가져다 놔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당시 망월 묘역엔 5·18 희생자들의 시신이 묻혀있었다.

그는 자신의 승용차로 부서진 비석을 망월 묘역으로 싣고 와 직접 파묻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 참배객들의 발아래 놓이게 됐다.

신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참배객들이 비석을 밟고 지나가도록 하면 상당한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비석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 5·18 희생자들은 국립묘지로 옮겨가고 지금은 이한열 열사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진 민주열사들이 영면하고 있다.

이곳을 참배하러 온 주요 인사들이 '전두환 비석'을 밟고 지나가는지 여부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묘역 참배를 마치고 나오다 비석의 존재를 듣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 발로 밟고 지나갔다.

전두환 비석 밟는 문재인[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두환 비석 밟는 문재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이한열 열사를 참배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역시 비석을 밟고 지나갔다.

문 대통령을 포함해 이낙연·추미애·심상정 등 진보 성향 정치인들은 대부분 비석 밟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반면 보수 성향 정치인들은 민족민주열사 묘역까지 방문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나 2016년 8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김무성 전 대표는 이곳을 찾았다가 "나는 밟을 수 없지"라며 비켜 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석을 밟았거나 밟지 않아 논란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2018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이 비석을 밟고 지나갔다가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모르고 밟았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전두환 비석 스쳐 지나는 김무성[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두환 비석 스쳐 지나는 김무성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주평화당 정동영 전 대표는 2018년 8월 비석을 밟지 않고 지나쳤지만 "비석이 많이 훼손되고 있어 되도록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해설사의 안내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해를 피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2016년 비석을 밟았지만, 이듬해엔 비석을 밟지 않는 동선으로 참배를 했다가 '보수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지만 "동선이 문제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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