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흥∼ 범 내려온다'…전국 곳곳에 넘쳐나는 호랑이 지명·설화
상태바
'어흥∼ 범 내려온다'…전국 곳곳에 넘쳐나는 호랑이 지명·설화
  • 연합뉴스
  • 승인 2021.12.30 1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2년 임인년 검은 호랑이 해…마을·섬 등에 호랑이 흔적 넘쳐
호랑이 꼬리 '호미곶', 호랑이 설화 얽힌 '범섬' 등 스토리 다양
용맹함의 상징, 한국 호랑이[연합뉴스 자료사진]
용맹함의 상징, 한국 호랑이[연합뉴스 자료사진]

임인년(壬寅年)의 태양이 떠오른다. 2022년은 흑색에 해당하는 '임(壬)'과 호랑이에 해당하는 '인(寅)'이 만난 검은 호랑이, 즉 흑호(黑虎)의 해다.

단군신화 속 호랑이부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까지, 호랑이는 무섭고 사나운 존재로 때론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권위와 용맹의 상징으로 우리 역사 속에 다채롭게 깃들어있다.

호랑이 기운을 듬뿍 받아 무탈한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호랑이의 설화가 묻어있는 지역 곳곳을 들여다본다.

◇ 호랑이 관련된 지명 수두룩…포항 호미곶 등 전국에 389곳

전국 시군 곳곳에는 호랑이와 관련한 지명이 많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호랑이가 포함된 지명은 389개나 된다.

새해 첫해를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의 '호미곶(虎尾串)'이 대표적이다. 호미곶은 원래 '장기곶'으로 불리던 곳으로 한반도 지도 전체를 호랑이 모습에 비유했을 때 이 지역이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 이름이 바뀌었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호산리'도 마을 뒷산이 범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개 행정리로 이뤄진 호산리에는 밖범이, 안범이, 밤이고개, 새터범이 등 호랑이와 관련한 다양한 지명이 존재한다.

전남 고흥군 과역면 복호산은 '엎드릴 복(伏)'자를 사용해 호랑이가 엎드린 듯한 산의 모양새를 나타낸 지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달이 지고 날이 새므로 호랑이가 가지 못하고 엎드려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호랑이가 많이 출몰한다고 해 '범(虎·호랑이)'이 쓰인 지명도 많다.

부산 동구 수정산 자락을 감싸는 범일동, 범내골, 범천동 모두 지명에 범 자가 들어간다. 수정산에는 산림이 우거지고 커다란 바위와 물이 많아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범일동 안창마을은 '호랑이 마을'로도 불린다. 안창마을 앞 범일 4동과 범천 2동을 가로지르는 하천 이름도 '호계천'이다.

경기 안성시 금광면 복거리는 과거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서 '복호리'로 불렸다.

경기 가평군 호명산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호랑이굴'도 있다. 이 역시 호랑이가 드나들며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들이다.

경복궁 근정전 기단의 백호[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복궁 근정전 기단의 백호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든든한 수호신' 호랑이, 각종 상징물에도 고스란히 담겨

호랑이는 소원을 들어주고 나쁜 것을 물리쳐 주는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수호신을 기대하며 호랑이를 조각한 석상들이 많다.

경복궁 근정전 위 기단의 서쪽 계단 기둥에는 백호가 자리해있다. 백호는 청룡, 주작, 현무와 더불어 사신 중 하나로 궁궐과 하늘 등의 서쪽을 관장하고 지키는 신령으로 여겨졌다.

조선 시대 호랑이가 많이 출몰했던 서울의 인왕산은 조선 건국 시 도성을 지키는 우백호로 삼았던 명산이다. 이곳을 오르다 보면 중턱쯤에서 호랑이 조형물을 만나 볼 수 있다.

전북 임실군 호암리에는 호랑이 석상이 세워져 있다.

과거 이 마을에는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었는데 어느 날 주민들이 이 바위를 없앤 후부터 화재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등 우환이 잇따랐다.

그 이유를 범 바위를 없앴기 때문이라고 여긴 주민들이 현재 위치에 호랑이 석상을 건립했다. 무서운 표정 대신 환한 웃음을 짓고 있어 전통적으로 그려지던 호랑이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호암리 마을을 지키는 익살스러운 호랑이였다.

경상남도 내륙 한가운데 위치한 의령의 한우산에는 빽빽이 들어선 나무 사이로 큰 호랑이 모형이 세워져 있다.

한우산 인근 신전마을 주민들이 한우산을 올려다봤더니 호랑이가 눈에 파란 불을 켜고 쳐다보고 있었다는 목격담이 내려온 데 착안해 세워진 조형물이다. 한우산 호랑이는 마을을 지키는 신성한 영물로 여겨져 한우산 산신으로 불렸다.

호랑이 관련한 설화가 전해지는 제주도 '범섬'[제주도청 홈페이지 캡처]
호랑이 관련한 설화가 전해지는 제주도 '범섬'
[제주도청 홈페이지 캡처]

◇ 설화 속에도 자주 등장한 호랑이…제주 서귀포 '범섬' 설화 애틋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는 곳도 많다. 큰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과 같아 이름 붙은 제주 서귀포시 '범섬'은 애틋한 전설을 안고 있다.

오랜 옛날 한라산에 살던 범 한 마리가 99마리의 새끼를 낳아 키웠는데 한라산에는 정상으로부터 해안 쪽을 향해 이뤄진 계곡이 99개(아흔아홉골) 밖에 없었다.

어미 호랑이는 새끼 한 마리당 계곡 하나씩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나자 살 곳을 잃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어미는 한라산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범섬을 향해 힘껏 뛰었다.

하지만 많은 새끼를 키우느라 허기진 어미는 북쪽 절벽에 앞다리가 가까스로 닿았지만 기어오르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었다. 범섬 북쪽 절벽에 생긴 직경 2m의 타원형 동굴은 이때 범의 발톱에 의해 패어 생겼다는 것이다.

부산 북구 화명동 동쪽 화산 아래에는 '호투장'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옛날 화산 아래 대밭골에 마을을 지켜주는 주산신령인 호랑이가 살았는데 떠돌아다니는 호랑이가 사람들을 해치러 오면 주산신령이 큰 울음소리를 내 사람들이 조심하도록 했다고 한다. 호투장은 주산신령이 떠돌이 호랑이와 싸우던 곳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견두산은 원래 산세가 호랑이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호두산'으로 불렸다. 그러나 호랑이에 물려 죽는 사람이 많아지자 산을 향해 호랑이 모습을 한 호석을 세우고 개를 뜻하는 견두산으로 개명해 재앙이 없어졌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다가오는 임인년24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해운대구청이 다가오는 임인년을 맞아 설치한 호랑이 조형물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2021.12.24 (사진=연합뉴스)
다가오는 임인년
24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해운대구청이 다가오는 임인년을 맞아 설치한 호랑이 조형물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2021.12.24 (사진=연합뉴스)

이렇듯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그 상징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