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또 무너진다] 불법 하도급이 부실시공의 근원…"가장 싸고 가장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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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또 무너진다] 불법 하도급이 부실시공의 근원…"가장 싸고 가장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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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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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하청→재하청 구조 속 단가 후려치기 만연…공기 맞추려 현장서는 속도전
중대 재해의 71%는 건설업장서 발생…형식적 안전점검·사후약방문식 조치 문제
어느덧 사고 닷새째붕괴사고 닷새째인 15일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2022.1.15 (사진=연합뉴스)
어느덧 사고 닷새째
붕괴사고 닷새째인 15일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2022.1.15 (사진=연합뉴스)

"원청에서 하청을 받은 업체가 재하청을 줄 때는 가장 싸고, 가장 빠르게 공사를 끝내길 원한다. 이런 경우 적정 공사비와 공기(공사기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서 결국 무리하게 작업하게 된다."

경기 지역의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는 한 건설 근로자의 말이다.

원청→하청→재하청 구조로 이뤄진 국내 건설시장의 문제점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 건축물 붕괴 사고는 불법적인 설계·구조 변경, 불법 하도급·재하도급, 공사현장 관리 소홀, 안전 수칙 미준수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어난다.

이 중에서도 건설업계에서는 현장에 만연한 불법 하도급 관행을 부실시공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관련 제도 정비는 형식에 그칠 뿐 실질적인 현장 여건 개선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태로운 모습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닷새째인 15일 건물 외벽과 바닥 슬래브가 위태롭게 건물에 걸려 있다. 2022.1.15 (사진=연합뉴스)
위태로운 모습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닷새째인 15일 건물 외벽과 바닥 슬래브가 위태롭게 건물에 걸려 있다. 2022.1.15 (사진=연합뉴스)

◇ 예고된 대형 참사…최근 불법 하도급 점검서 34%가 법규 위반

16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그간 국내에서 발생한 대형 붕괴사고는 인·허가나 공사 과정 등에서의 불법·편법 사실이 어김없이 확인됐다.

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는 허술한 기초공사로 받침기둥이 상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일어났고, 1995년 서울 서초구 상품백화점 붕괴 사고 역시 무리한 설계변경을 통한 증축과 하도급 업체에 대한 싼값의 공사 재발주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지난해 6월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해서도 불법 하도급 사실이 드러났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일반 건축물 철거 작업을 위해 조합 측과 50억원에 계약을 맺은 뒤 서울 소재 한솔기업에 하청을 줬다. 이후 한솔과 다원이앤씨가 공사비를 7대 3으로 나누는 이면계약을 맺은 뒤 광주지역 백솔건설에 다시 불법 재하청을 준 것으로 수사기관은 파악했다.

이 때문에 해당 재개발 현장의 철거 공사비는 최초 50억원에서 11억원으로, 다시 9억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가 학동 참사 이후 안전관리를 강화하면서 지난해 11월 15일부터 12월 20일까지 공공공사 현장 136곳에 대한 특별실태점검을 벌인 결과 46곳(34%)에서 불법 하도급 사례가 적발됐다.

46개 업체 중 43곳은 도급 금액의 80% 이상 직접 시공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나머지 3개 업체는 도급금액의 20% 범위에서 하도급을 줬으나 발주자의 사전 서면 승인을 받지 않았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건설안전기본법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셈이다.

보통 원청으로부터 일감을 받은 하청업체는 재하도급 전담자를 두고 재하청업체 공사비 단가를 후려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재하청업체는 빠듯한 공사비로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안전을 등한시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뤄지게 된다.

광주·전남 건설 공사 현장에서 5년간 형틀 목수로 일한 이준상(41)씨는 "원청사에서 하청을 받은 전문건설업체에서는 재하도급을 주도하는 총괄 책임자를 둔다"며 "통상 '도급 이사'나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 불리는 이들이 재하도급사에 공사비를 후려치고, 공기 단축을 압박한다"고 말했다.

최근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와 관련해선 아직 불법 재하도급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유사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한 정비업체 3곳은 모두 합법적으로 공사에 참여한 협력업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력 20년 이상의 한 건축사는 "건축·시공 관련 법규는 엄청나게 강화돼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시공 능력 부족이나 구조 설계상의 오류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현장 시공상의 공정 관리나 진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화정아이파크의 외벽이 무너져내린 이유도 햇볕이 부족한 겨울철에 콘크리트가 충분히 양생(養生)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기를 맞추기 위해 속도전을 벌이다가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건설노조 광주전남본부가 확보한 현장 타설 일지에 따르면 "12~18일 동안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쳤다"는 현대산업개발의 해명과 달리 35층부터 PIT층(설비 등 배관이 지나가는 층)까지 5개 층이 각각 6~10일 만에 타설된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더해 이번 사고 현장의 경우 레일 일체형 시스템(RCS·Rail Climbing System) 공법도 한몫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RCS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틀(갱폼)을 유압으로 올리는 자동화 방식(시스템 폼)인데 공정 속도가 빠른 반면 설비 자체가 무거워 안전관리 소홀 시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현장 구조작업[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현장 구조작업
[연합뉴스 자료사진]

◇ 축소된 공사비·무리한 공기 단축에 노출된 재하도급사

건설노조도 공사를 따낸 대형 종합건설사인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재하도급 과정을 부실시공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한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실장은 "광주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발생한 붕괴 참사는 객관적·과학적 조사를 통해 시공상의 원인을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도 "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내려가면서 불법적으로 발생하는 공사비 축소와 무리한 공사 속도전이 안전 관리 부실의 근원적인 '태풍의 눈'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건설노조에서는 하청 과정에서 '쥐어짜기'의 원인이 되는 최저가 낙찰제의 문제점도 지적하면서 완전한 폐지를 주장한다.

현재는 관급 공사에서 발주기관이 원청에 일감을 줄 때만 최저가 낙찰제 적용을 받지 않는데 관급·민간 공사의 모든 과정에서 상식적인 공사비와 공기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하도급 과정에서 축소된 공사비뿐 아니라 불안정한 근로 계약도 부실시공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로 일하는 박모(47)씨는 "20년간 일하면서 원청사나 하청사로부터 직고용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고용 안정과 적정 인건비가 대형 사고 발생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현장 상흔[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현장 상흔
[연합뉴스 자료사진]

◇ 붕괴사고 급증 속 원청은 꼬리 자르기…정부 사전점검·사후조치 미흡

행정안전부의 재난연감에 따르면 건축물을 포함한 붕괴사고는 2015년 431건에서 2020년 4천557건으로 늘어 5년 만에 10배 넘게 급증했다. 다만 같은 기간 붕괴사고에 따른 사망자는 19명에서 27명으로, 부상자는 236명에서 245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아울러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작년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 위반 사업장 1천243곳의 명단을 보면 건설업이 58.9%를 차지했다.

특히 사망 재해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사업장 17곳 가운데 70.6%(12곳)가 건설업장이었다.

이처럼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통상적으로 원청사인 종합 건설사는 빠져나가고 처벌은 하청 책임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 현실이다.

광주 학동 참사와 관련해서도 업체 선정·계약 비위로 현재까지 총 25명이 입건됐지만, 원청사인 현대산업개발의 입건자는 단 1명에 그쳤다.

현대산업개발은 당시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주택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도급사인 대형 건설사들은 하청 업체에 정상적인 대가를 지급한다"며 "하청업체가 재하도급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일까지 원청업체가 관리하기는 어렵다는 논리"라고 꼬집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한 직후 당국이 사후약방문식 처방에 급급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토부가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20일까지 한 달여 동안 전국 3천80개의 건설 현장을 상대로 합동 점검을 했지만, 이번에 외벽 붕괴 사고가 난 화정 현대아이파크는 대상에서 빠졌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직후 뒤늦게서야 국토부는 공사가 진행 중인 전국 건설현장 3만곳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경우 광주 학동 참사에도 지난해 12월 말 현대산업개발에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HSA-MS) 인증을 부여했다가 문제가 되자 최근 취소하기도 했다.

저임금 노동자(PG)일러스트
저임금 노동자(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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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발주와 설계, 감리, 원청, 하청업체 등 건설 사업 참여 주체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안전관리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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