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대선 정국 강타한 윤석열의 '文 정부 적폐 수사'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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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대선 정국 강타한 윤석열의 '文 정부 적폐 수사' 발언
  • 연합뉴스
  • 승인 2022.02.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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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하는 윤석열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 케이 호텔에서 열린 '공정과 국민통합의 대한민국-전북과 함께!' 신년 인사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2022.2.10 [국회 사진기자단]
축사하는 윤석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 케이 호텔에서 열린 '공정과 국민통합의 대한민국-전북과 함께!' 신년 인사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2022.2.10 [국회 사진기자단]

대통령이 될 경우 현 정부의 적폐를 수사하겠다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발언이 대선 정국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참모 회의에서 윤 후보 발언에 대해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는 이 정부의 적폐가 있는데도 못 본 척했단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 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전날 윤 후보의 인터뷰가 공개된 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전언 형식으로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왔는데 이를 훨씬 뛰어넘는 수위이다. 그동안 대선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던 문 대통령이 직접 강한 어조로 윤 후보를 겨냥한 것도 이례적이다. 자신이 몸담았던 현 정부를 적폐로 규정한 윤 후보의 발언이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도 벌집을 쑤신 듯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평생 특권만 누려온 검찰 권력자의 오만 본색이 드러난 망언", "검찰 공화국 선언"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발언의 경위와 과정,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대선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향후 대선 구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합뉴스 등 세계 7대 통신사와 합동으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다가온 선거 시기와 선거의 결과가 남북정상회담을 갖기에 부적절한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언급도 했다. 지지 세력이 결집하면서 양강 체제가 더욱 공고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지만 정치 보복 문제는 워낙 폭발력 있는 이슈라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문제의 발언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나왔다. 윤 후보는 현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 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에 대해서도 "재수사가 되지 않겠나. 정신이 제대로 박힌 검사들이 수사한다면 유동규 씨가 다 했다고 볼 거냐는 거다. 권한을 가진 사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시장인데"라고 말했다. 또 한동훈 검사장과 관련해 "왜 A 검사장을 무서워하나. 이 정권에 피해를 많이 보았기에 서울중앙지검장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말이 안 된다. 거의 독립운동하듯 해온 사람이다"라고 언급했다. 수사는 시스템에 따라 하는 것이고, 자신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말처럼 듣기에 따라서는 "정치보복을 하겠다"는 뜻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 대통령은 원래 검찰 수사에 관여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데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언급 자체가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해 수사에 큰 영향을 줄 게 틀림없다. 이렇게 되면 수사가 아무리 공정하게 진행돼도 그 정당성을 의심받게 되고 국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여권에서 윤 후보가 집권할 경우 측근 검사들을 동원해 현 정부의 비리를 캘 것이라는 의심과 공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윤 후보의 발언이 계획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라도 부적절해 보인다. 의도했다면 현 정부와의 선명한 대결을 통해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는 것인데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 지도자의 태도가 이래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은 특정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진영의 대표가 아니라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고 통합을 이끌어야 할 국민의 대표이다.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시기에 이를 예고하는 듯한 얘기를 입에 올려서야 되겠는가. 여론 조사에서 다소 우위를 보이는 윤 후보가 굳이 이런 풍파를 일으켜 무슨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계획에 없었지만 마침 질문이 나와 평소의 소신을 불쑥 얘기한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검사의 언어와 대통령 또는 대통령 후보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현직 검찰총장이 제1 야당의 대선 후보로 직행한 상황이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현 정부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으나, 윤 후보 스스로 '검찰 공화국'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잇따른 실언으로 연일 표를 깎아 먹은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지지율이 좀 올랐다고 다시 오만함에 취한 것 아닌가. 그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뒤 "저 윤석열 사전에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좀 더 분명하게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대선이다.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아무리 급하더라도 국민을 분열시키고, 적대감을 부추기는 언행만은 자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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