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기후위기란] ① '위기의 북극곰'과 한국의 거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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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기후위기란] ① '위기의 북극곰'과 한국의 거리감
  • 연합뉴스
  • 승인 2022.03.0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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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홍수·투발루 수몰 위기 알지만…"피부에 와닿진 않아"
위기 대응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의지 있지만 방법 잘 몰라
북극곰[연합뉴스 자료사진]
북극곰
[연합뉴스 자료사진]

"온라인에서 기후 관련 뉴스를 읽거나 가끔 눈에 띄는 다큐멘터리를 보노라면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관념적 느낌은 있어요. 하지만 '지구가 망한다 해도 내가 죽는 지경이 돼야 정말 망하는 거지'라는 생각? 그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요."

에너지 관련 기업체에서 근무하는 이경욱(가명·41) 씨는 기후 위기에 관한 인식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하며 다소 멋쩍어했다. 유치원생 딸을 키운다는 그는 "안전불감증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산다면 내 딸 세대까지는 심각한 위기 없이 살아갈 조건은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지난달 만난 시민 10명 가운데는 기후 위기에 대해 이런 심리적 거리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빙하가 녹아 생존을 위협받는 북극곰, 지난해 유럽을 강타한 대홍수, 침수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 등은 알지만 지금 한국에 사는 자신의 문제로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북극곰[연합뉴스 자료사진]
북극곰
[연합뉴스 자료사진]

◇ 아직은 '생활양식 변화' 수준?…"어종 바뀌면 안 먹으면 되니까"

교육계에서 일하는 서명진(가명·44) 씨는 '일상에서 플라스틱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느낄 때 외에는 기후 위기나 환경 문제를 별로 떠올리지는 않는 편이다. 어린 조카를 무척 아낀다는 그는 쏟아지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보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걱정된다고 한다.

서씨는 "아이들의 시대가 지금보다는 낫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며 "사실은 기후변화가 이처럼 심각한 문제이고, 이걸 먼저 체감해야 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다 부동산, 주식 등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에 몰릴 수밖에 없어 한편으로는 안타깝다"고 했다.

여성인 그가 기후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느끼는 또 다른 경우는 옷장을 볼 때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가을이 짧아지는 현상이 매년 이어지자 생활 양식에도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온라인으로 옷을 많이 구매하잖아요. 대화하다 보면 '이번에 간절기 옷 하나 사야지'라는 등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요즘은 다들 '겨울 지나면 좀 있다 바로 여름옷을 꺼내야 한다'고 해요. 저도 자주 안 입는 옷을 빼놓는 공간에 간절기 옷이 많아졌어요. 그럴 때나 기후변화를 체감하죠."

화력발전소[연합뉴스TV 제공]
화력발전소
[연합뉴스TV 제공]

폭염 에 온열질환자가 잇따르고 실외노동자가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지만 이 역시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서씨는 "내가 어릴 때도 일사병 같은 온열질환이 있었으니 이런 뉴스를 봐도 기후 위기 때문이라기보다 여름이면 으레 있는 일 정도로 여겼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진철(가명·23) 씨도 '북극곰 다큐'나 세계 각지의 기후재난에 관한 언론보도 등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수도권에만 연고가 있는 그에게 수온 상승에 따른 어종 변화나 남부지방 홍수, 식물 북방한계선 상승에 따른 농작물 지도 변화 등은 다소 먼 얘기였다.

이씨는 "남부지방에서 이상기후에 따른 폭우로 가까운 친척이 피해를 봤다면 기후 위기가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생긴 적이 없다"며 "기후 감수성이 낮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도 있지만, 예컨대 나는 어종 변화로 오징어 값이 오르면 오징어를 안 먹으면 그만인 입장"이라고 했다.

기후 위기가 계속되면 미래세대로서 그 여파를 고스란히 받게 될 고등학생 오진우(가명·18) 군도 당장 기후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그의 최대 관심사는 대학 진학이다.

오군은 "예전에 책을 보면서 지구 온도가 몇도 올라갈 때마다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생각해본 적은 있다"면서도 "일상에서는 미세먼지가 심하면 마스크를 쓰고, 기온이 높으면 에어컨을 켜면 되니 아직은 그리 큰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에어컨[연합뉴스TV 제공]
에어컨
[연합뉴스TV 제공]

전문가들은 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도시민들의 생활 방식 특성상 기후 위기 체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면서도, 이런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려면 해외의 기후 위기 실태뿐 아니라 국내에서 목격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징후들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안병옥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은 "기후변화는 우리의 지각 능력으로 포착할 수 없을 만큼 느리게 진행되므로 도시민들 입장에서는 폭염·폭우 등 계기가 없으면 평소에는 체감하기 어렵다"며 "또 현재의 문제이자 불확실성을 동반하는 미래의 일이어서 불분명한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안 이사장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언론보도나 우리 사회의 논의가 '전 지구적 문제'라는 관점에서 다뤄질 때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 관련 보도나 보고서의 양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점도 일반 시민들의 체감도를 약화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뭘 하면 어떻게 도움이 될지…누가 좀 알려주세요"

시민들은 이처럼 기후 위기가 스케일이 큰 전 지구적 현안이며 당장 국내에서 심각성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는 데 공감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제조업체 직원 최진우(가명·41) 씨는 "일상에서 물건 아껴 쓰기, 오래 쓰기 등 가족들과 소소하게 실천하는 것들은 있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무엇을 하면 좋은지 누군가가 알려주면 좋겠다"며 "예컨대 어떤 행위가 온실가스 감축에 어떤 영향을 주는데, 개인이 혼자 할 때는 어떤 수준이지만 1억 인구가 동참하면 얼마나 줄어든다는 식으로 데이터를 함께 보여준다면 실천을 유도하고 캠페인 등을 벌이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T업체에서 근무하는 박길호(가명·33) 씨는 "일반 시민들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에서는 다들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고 싶어하리라 본다"며 "어떤 사람에게는 반려동물이, 누군가는 자녀가 일상에서 기후 위기를 연상시키는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이런 장치를 찾아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 글 싣는 순서]

① '위기의 북극곰'과 한국의 거리감

② 거대한 흐름 속 "작은 실천 의미 있나요"

③ '실천하는 시민' 어떻게 만들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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