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생태·역사 탐방을 한 번에…한반도 첫 수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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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생태·역사 탐방을 한 번에…한반도 첫 수도길
  • 연합뉴스
  • 승인 2022.04.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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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자연·역사·문화 '특구' 고창
운곡저수지의 갈대숲은 철새들의 휴식공간이다.
운곡저수지의 갈대숲은 철새들의 휴식공간이다.

전북 고창은 세계가 인정한 자연, 역사, 문화 지역이다.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2013년 고창군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건 국내에서 처음이다. 또 고창 고인돌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고인돌유적지와 맞붙은 운곡습지는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람사르습지로 지정돼 있다.

이뿐 아니다. 고창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아울러 고창은 이웃 부안군과 함께 전북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고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판소리와 농악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국악 개척자로, 판소리를 집대성했던 신재효 선생의 고택에는 고창판소리박물관이 있다.

갯벌과 습지는 고창 사람들이 지켜낸 것이다. 고인돌, 판소리, 농악은 고창이 창조, 계승, 발전시킨 역사이자 문화다. 국제사회는 이런저런 이유로 고창을 특별한 지역으로 규정했다. 이는 고창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빚어낸 문화의 가치가 갖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고창을 세계적 자연, 역사, 문화의 '특구'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겠다.

산기슭을 따라 이어진 고인돌 유적지
산기슭을 따라 이어진 고인돌 유적지

◇ '고인돌 왕국'과 한반도 첫 도읍

청동기 시대 유적인 고인돌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많다. 한국은 세계 최대 고인돌 유적지라고 할 만큼 많은 고인돌이 발견됐다. '고인돌 왕국'인 셈이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약 3만여 기, 북한에서 1만∼1만5천여 기의 고인돌이 나왔다. 이는 세계 고인돌의 약 40%에 해당한다.

한국의 고인돌은 서해안 지역, 특히 호남지방에 밀집해 있다. 호남에서는 2만여 기 고인돌이 발견됐다. 호남에서도 고창은 세계 최대 고인돌 군집지대로, 2천여 기가 분포해 있다.

고창 죽림리와 상갑리 일대에는 산기슭을 따라 고인돌 447기가 약 1.8㎞에 걸쳐 이어져 있다. 운곡습지생태공원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약 300t 무게의 고인돌이 있다. 청동기 시대 대표적 무덤 양식인 고인돌이 유독 한반도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고, 학계가 답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다만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하지 않으면 조성할 수 없는 거대한 고인돌 군집은 선사시대에 강력한 권력을 가진 부족 국가와 유사한 큰 사회 조직체가 이곳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는 학설이 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고창군은 한반도 첫 수도를 자처한다. 고창고인돌유적공원은 광활한 들판이다. 들판 여기저기에 고인돌이 산재했다. 선사시대 고인돌마을로 떠나는 시간 여행은 힐링이 함께 한다.

하늘과 땅은 열려 있고, 들을 휩쓰는 바람 소리에는 수천 년 전 이곳을 주름잡았던 주인공들의 함성이 섞여 있는 듯하다. 고인돌 유적은 어둡고 답답한 실내에 갇히지 않고, 자연 현장에서 역사를 곱씹어볼 수 있는 야외 박물관이다.

운곡저수지 둘레길은 포장이 된 평탄한 길이다.
운곡저수지 둘레길은 포장이 된 평탄한 길이다.

◇ 생태 관찰에 역사 탐방 더한 '콤보' 산책길

고창에는 '한반도 첫 수도 길'이 조성돼 있다. 편안한 도보 여행길이다. 예향천리 마실길 9개 코스, 운곡생태습지길 4개 코스 등 13개 코스다. 고창의 자연환경과 문화역사를 돌아보면서 선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길들이다.

이중 운곡생태습지길은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산지형 습지와 고인돌 유적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탐방로다. 운곡생태습지길 1코스와 2코스를 섞어서 걸었다. 1코스는 고인돌유적을 관찰하기 좋다. 2코스는 습지를 체험할 수 있다. 1·2 코스를 함께 걸으면 생태와 역사를 한 번에 탐방할 수 있다.

1코스는 고인돌유적지 탐방안내소∼운곡습지생태연못∼생태둠벙∼조류관찰대∼운곡습지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3.6㎞ 길이다. 2코스는 습지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해 안덕제∼운곡서원∼운곡습지생태공원∼조류관찰대∼생태둠벙∼용계마을∼수변경관쉼터를 거쳐 습지탐방안내소로 원점 회귀한다. 거리는 9.6㎞.

우리는 습지탐방안내소를 출발해 운곡저수지를 따라 안덕제, 운곡서원, 세계 최대고인돌, 운곡습지생태공원, 조류관찰태, 생태둠벙를 탐방한 뒤 운곡습지생태연못을 지나 고인돌유적지 탐방안내소까지 걸었다.

서너 시간 걸렸지만 길은 힘들지 않았다. 어린이나 노약자도 걷기 좋게 길이 잘 닦여져 있거나 데크 길이 조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데크 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았다. 생태 보호 조치의 하나였다. 좀 불편할 수 있겠으나 자연을 위한 배려에 동참해야겠다.

운곡습지 생태연못
운곡습지 생태연못

◇ '작은 DMZ' 운곡람사르습지

운곡습지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깃들어 있다. 운곡습지는 원래 논이었다. 1980년대 초 논에 물을 대던 운곡저수지가 영광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 공급원으로 결정되면서 인근 마을들이 수몰됐고, 논은 폐경지로 방치됐다.

폐경지는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원시 상태로 복원돼 수량이 풍부하고 오염원 없이 깨끗한 현재의 습지가 됐다. 신영순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사무국장은 "운곡습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연이 스스로 복원됐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1.797㎢인 운곡습지는 자연 생태계의 놀라운 회복력을 웅변한다.

원시 모습을 되찾은 운곡습지에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인 수달과 황새, 2급인 삵, 구렁이, 팔색조, 큰기러기, 큰고니, 흰목물떼새, 가시연, 긴노랑상사화,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인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등이 서식한다. 철새들이 고향으로 돌아갔을 시기가 지났는데도 운곡저수지에는 큰고니, 가창오리, 가마우지 등이 일부 남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2013년 국립환경과학원의 습지보호지역 정밀조사 결과 식물 376종, 육상곤충 390종, 저서무척추동물 24종, 양서파충류 12종, 조류 51종, 포유류 11종 등 총 864종이 운곡습지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곡습지는 이처럼 생명의 보고라는 점에서, 풍부한 생태를 간직한 '비무장지대(DMZ)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저수지 둘레를 돌아 습지 핵심구역으로 들어갔더니 질척거리는 진흙 위에 온갖 나무와 풀들이 뒤엉켜 있고 그 사이로 새들이 쏜살처럼 날아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메마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풍요로운 생태를 목격할 수 있었다.

생태탐방로를 따라 볼 수 있는 물이 고인 습지
생태탐방로를 따라 볼 수 있는 물이 고인 습지

◇ 우리나라에 있는 람사르습지는 24곳

습지의 사전적 의미는 '물기가 축축한 땅', '물을 담고 있는 땅'이다. 한국에서 1999년에 시행된 습지보전법은 습지를 '담수, 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혹은 일시적으로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 정의한다.

내륙 습지는 육지 또는 섬에 있는 호수, 못, 늪, 하구 등이다. 연안 습지는 주로 갯벌이다.

습지가 중요한 건 홍수조절, 해안선 안정화 및 폭풍 방지, 동식물에 영양분과 먹이 공급, 기후 조절, 수질정화, 생물 종 다양성 유지, 생산 등의 기능을 하고 여가, 관광, 문화 활동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습지는 어패류 같은 식량과 목재, 땔감 등 생활용품도 제공한다. 세계 인구 중 약 10억 명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어패류를 먹는다. 아시아에선 습지식물 중 하나인 벼를 재배해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람사르습지란 람사르협회가 지정, 등록해 보호하는 습지다. 람사르협약의 정식 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돼 람사르협약으로 불린다.

도산리의 탁자식 고인돌
도산리의 탁자식 고인돌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는 것은 해당 습지의 중요성과 가치가 세계적으로 매우 큼을 뜻한다. 2021년 현재 람사르협회에 등록된 한국의 습지는 대암산용늪(1997년), 창녕 우포늪(1998년) 등 24곳이다.

운곡습지는 2011년에 등록됐다. 제일 마지막으로 등록된 습지는 고양 장항습지(2021)이다. 람사르습지 24곳 중 고창갯벌, 운곡습지 등 2곳이 고창에 있다.

고인돌과 습지 외에도 고창에는 문화, 역사, 자연 유산이 풍부하다. 동백, 꽃무릇, 단풍으로 유명한 천년고찰 선운사, 가장 아름답게 보존된 읍성으로 평가받는 고창읍성, 겨울이면 가창오리 떼의 환상적 군무를 볼 수 있는 동림저수지, 학원 농장 청보리밭 등이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다.

한반도 첫 수도의 자부심에 걸맞은 풍요가 아닐 수 없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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