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의 대화'로 시작됐던 검찰 개혁…19년 뒤 검수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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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의 대화'로 시작됐던 검찰 개혁…19년 뒤 검수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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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1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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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검찰, 20년 걸친 악연…검찰 수사권 폐지로 '정점'
참여정부서 검찰개혁 논의 시작…현 정부 내내 검찰 힘 빼기
조국 수사, '검수완박' 도화선 돼…스스로 개혁 못한 검찰 비판도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전국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메모하고 있다. 방송 카메라 앞에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의 모습도 보인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전국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메모하고 있다. 방송 카메라 앞에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의 모습도 보인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지요."

2003년 3월 9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은 열띤 흥분 속에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TV로 전국에 생방송 된 이날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개혁 대신 인사 문제만 물고 늘어지며 대통령 주변까지 언급하는 젊은 평검사들에게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평검사들은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11기수나 아래인 비검찰 출신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검사장 기수를 파괴하는 등 대대적으로 추진된 청와대의 검찰 인사를 '밀실인사'라고 비판했다.

검사들의 집단 반발 속에 이날 100분간 이어진 토론에는 노 대통령 외에 문재인 민정수석, 박범계 법무비서관이 배석했다. 검사들은 민정수석과 법무비서관을 검찰 인사에 관여하면 안 되는 '외부인'이라고 지칭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인 2011년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의 운명』(이하 『운명』)에서 "목불인견", "개혁을 말한 검사는 없었다"며 그날의 '대화'를 불쾌했던, 개탄스러운 '사건'으로 기록했다.

19년 전 이 '대화'는 이후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상징'이자 검찰과 현 민주당의 '악연'의 '시발점'이 됐다.

노 대통령은 '권력이 검찰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기조하에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자발적 개혁을 기대했지만 검찰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도중 서거하면서 검찰개혁 여론이 폭발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모욕주기 위해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가 기획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피의사실 공표 논란도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중수부 폐지는 검찰의 탈정치, 정치 중립을 위해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 중립 요구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이듬해인 2010년 2월 여당인 한나라당과 함께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를 구성해 검찰개혁에 다시 손을 댔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도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민주당이 주도한 사개특위는 경찰에 수사개시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검경 수사권 조정의 첫 단추를 끼웠다. 다만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해 경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4월에서야 이뤄졌다. 중수부는 대형 특수수사를 도맡아 처리해 '거악 척결'의 상징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표적 사정, 편파 수사 등의 시비에 시달린 끝에 출범 3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9년 9월 25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대전지검 천안지청을 나오고 있다. 조 장관은 이날 천안지청에서 검사·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9월 25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대전지검 천안지청을 나오고 있다. 조 장관은 이날 천안지청에서 검사·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검찰개혁을 내걸었고, 현 정부 집권 이후 검찰과의 전면전에 투입된 조국·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 조직과 권력을 축소하는 등 검찰의 힘을 빼는 데 집중했다.

2013년 만들어져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렸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2019년 폐지됐다. 대검 중수부의 기능을 물려받아 부패 수사의 명맥을 이었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는 반부패·강력수사부로 이름이 바뀌며 규모가 축소됐다.

전 정권이 탄핵당하며 집권한 민주당은 한결 힘들이지 않고 검찰을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경찰에 일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6대 중대범죄를 제외한 검찰의 직접 수사 폐지 등을 제도화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2019년 7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검찰 수사는 정권과 민주당의 강한 반발을 사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도화선이 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조 전 장관 수사를 했던 이른바 '윤석열 사단' 검사들을 모두 좌천시키고 그 자리를 친정부 성향 검사들로 채우며 또다시 검사들의 반발을 샀다.

현 정부 집권 초반 전 정부 적폐 수사를 이끌어 '우리 윤 총장'으로 검찰 수장이 된 윤석열 검찰총장은 끝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고 일갈하며 사표를 던졌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목전에 두고 소속 의원 172명의 이름을 모두 담아 이달 15일 발의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등 '검수완박' 법안은 '6대 범죄' 한정에서 더 나아가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뺏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개정안들이 통과되면 전국 2천900여명에 이르는 검사는 수사권을 잃고 사실상 경찰이 써준 영장을 청구하고, 경찰이 수사한 사건 기록을 들고 법원에 가서 재판을 하는 경찰의 '대서소'로 격하된다.

법사위에서 대기하는 검찰총장김오수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의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지난 15일 오전 국회를 방문, 법사위에서 대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법사위에서 대기하는 검찰총장
김오수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의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지난 15일 오전 국회를 방문, 법사위에서 대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검찰은 김오수 검찰총장이 '나를 먼저 탄핵하라며' 배수진을 치고, 일선 평검사들이 다시 평검사회의를 추진하는 등 집단반발하고 있다.

법정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도 '검수완박'에 반대하고 있고, 정부에 우호적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단체에서도 '속도'에 우려를 나타내는 등 반대 여론이 크지만 '검사와의 대화'로 막이 올랐던 검찰개혁은 결국 '검수완박'의 문턱까지 오게 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사와의 대화' 이후로도 검찰이 스스로 개혁할 기회를 차버리고 정치 권력에 예속돼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했던 조직 이기주의가 결국 스스로를 옭아매게 됐다는 자성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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