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공직 청년들] ② "'열심히 일하면 바보 되는 곳'에 있기 싫었다"
상태바
[脫공직 청년들] ② "'열심히 일하면 바보 되는 곳'에 있기 싫었다"
  • 연합뉴스
  • 승인 2022.04.23 0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젊은 퇴직공무원들이 말하는 공직사회 문화·업무처리·처우 문제
"낮은 급여에 '내 가치가 이 정도인가'라는 생각에 자존감 낮아져"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나는 열정이 많고,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인데 나의 결이 과연 공무원이라는 직업과 맞을까, 그런 고민을 계속해왔던 것 같아요. 퇴사가 쉬운 게 아니니 고민을 정말 오래 했고, 결국에는 많은 것들이 쌓인 끝에 그만두게 됐죠."

20대 여성 A씨는 9급 세무공무원으로 4년여간 근무하다 작년 말 의원면직으로 공직에서 나왔다. '어느 회사가 늘 만족스럽기만 할까. 남들도 다 힘들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하루하루 커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우울감까지 느낀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30대 남성 B씨는 국가직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해 4년가량 재직하다 스스로 퇴직했다. "계속 공무원으로 근무한다고 했을 때 뭔가 기대가 된다거나, 미래가 희망적이거나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A씨와 B씨는 젊은 나이에 퇴직한 전직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분명 장점은 있다면서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조직 문화, 직업인으로서 발전 가능성 등을 놓고 고민했을 때 자신에게는 공직생활이 결코 행복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 "하위직에 일 몰리고, 위에서 지시하면 그냥 따라야"

일선 세무서에서 근무한 A씨는 자신이 경험한 공직사회 분위기를 두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바보 되는 곳"이라고 했다.

"공무원이 워라밸을 추구할 수 있는 직장이라고 하는데, 근무지별로 다르겠지만 사실은 일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일을 잘하거나 열심히 하는 직원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직원들 몫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어요. 또 열심히 근무하는 분들이 많지만 업무보다 가정에 몰두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저 같은 경우 다른 사람 몫의 업무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일정 직급에 도달하면 업무에서 상당 부분 손을 떼는 일부 관공서의 문화도 젊은 A씨의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곳에서는 "9급에서 7급까지가 대부분 업무를 하고 6급부터는 안 했다"며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급이 오를수록 일을 안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신규 공무원으로 갓 입직하자마자 일이 자신에게 과도하게 몰려 곤혹스러웠다는 B씨도 "'열심히 하면 손해'라는 분위기가 전반적인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저는 그런 이미지가 되기 싫어서 일을 좀 열심히 한 편이었는데, 사실 정확한 업무분장에 따라 제 일만 했으면 그렇게까지 바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남들이 안 하는 업무까지 들어오니 일이 많아진 거죠. 한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서 그냥 해야 하는 일들이 소수에게 많이 몰리다 보니 좋지 않은 구조예요."

쉽게 바뀌지 않는 공직사회의 문화로 지적되는 상명하복식 의사결정 구조도 젊은 공무원에게는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B씨는 "팀장급인 40대나 실무자인 20~30대는 '이건 아니다'라는 걸 다 알지만 윗선이 결정하면 그걸 따르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며 "조직마다 약간은 다를 수 있지만 윗선에서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해 모든 업무가 결정되는 구조는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각을 넣지 말고 영혼 빼고 일하라'는 말도 들었다"며 "예산을 아낄 수 있는 방법,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사업을 하지 않는 것 등에 대해 팀장을 포함한 모든 팀원이 다 같은 생각이더라도 그 윗선에서 결정하면 그냥 따라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고 했다.

A씨는 젊은 여성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상사의 허드렛일까지 도맡았다고 한다.

그는 "아침에 커피를 준비하거나 차를 우려놓는 일, 신문 갖다 놓기 등 잡일을 시키는 상사도 있었다"며 "내 밑으로 신규 공무원들이 계속해서 들어왔지만 어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런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고 했다.

◇ "공직에 사명감 있었지만…민원 시달리다 자존감 추락"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관공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이 이른바 '악성 민원인'에 관한 고충을 털어놓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이런 글에는 공감과 함께 응대 요령을 공유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도 한다. 대민업무가 그만큼 큰 부담을 준다는 뜻이다.

A씨처럼 일선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은 대민업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 역시 공직에 입문할 당시에는 '국민들에게 세무와 관련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사명감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민원인에게 시달리면서 그런 생각이 희미해졌다고 한다.

"민원인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자존감이 정말 많이 낮아졌어요. 또 민원인에게 제가 곤란한 일을 당할 때 윗선에서 나와서 도와주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제가 담당자이긴 했지만, 저처럼 젊은 여성보다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직급이 와서 '안 됩니다'라고 하는 게 훨씬 무게감이 있거든요."

B씨도 "일선에서 대민업무를 하는 지방직 공무원 친구들을 보면 민원인의 90%는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고, 자신들에게 보람을 주는 경우는 10% 정도라고 한다"며 "그래서 수험생 때 정말 공적 사명감을 중시했던 이들도 막상 공무원으로 연차가 쌓이면 그런 게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한 구청의 민원창구[연합뉴스 자료사진]
한 구청의 민원창구
[연합뉴스 자료사진]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민원 담당 공무원을 상대로 한 욕설과 폭언, 기물 파손 등 위법행위는 2018년 1만8천525건에서 2020년 2만6천86건으로 3년 새 40.8%가량 증가했다.

주민센터 등에서 대민업무를 하다 퇴직한 전직 8급 공무원이 재직 당시 경험과 소회를 정리한 책 『공무원이었습니다만』에는 일선 관공서의 민원인 대응과 관련해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불시에 벌어지는 봉변 앞에서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견디는 것뿐이다. 돌발상황에서 우리를 지켜줄 안전장치는 직원 개인의 위기 대처 능력이 전부다. 운이 좋다면 용감한 동료들의 만류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사무실 전체가 발칵 뒤집힐 만큼 상황이 심각해야 가능한 일이다. 큰소리가 나면 무조건 공무원이 손해이기 때문에 뺨을 맞아도 발길질을 당해도 가해자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 "사기업보다 훨씬 낮은 급여…연금도 예전 같지 않아"

업무 여건과 조직문화 등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급여조차 적은 것도 젊은 공무원들이 이직을 고민하게 하는 현실적 이유가 된다고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과거만큼의 노후 보장도 장담할 수 없는 터라 '정년 보장'을 제외하면 다른 직업에 비해 크게 유리할 것도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B씨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업무강도가 민간 기업과 비교해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사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급여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며 "우리 세대에서는 연금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내려왔고, 겸직 금지 때문에 다른 것을 시도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돈 버니까 버틴다'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집값이나 물가 등 경제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며 "버티면 내 집을 마련해서 가족과 알콩달콩 사는 미래가 안 그려지니 좀 더 다양한 기회를 보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A씨도 "퇴직 후 다른 곳에 입사했는데 연봉을 보니 내가 공무원 시절 정말 연봉을 조금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람은 연봉으로 자신의 가치를 생각하기 마련인데, 공무원 재직 당시에는 급여가 너무 낮으니 '내 가치가 이 정도인가'라는 생각에 자존감도 낮아졌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게시판을 보는 시민[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게시판을 보는 시민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경제적 이유를 젊은 세대가 공직을 외면하게 하는 한 요인으로 보는 시각은 공무원 사회 밖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의 가장 큰 바람인 내 집 마련이 공무원 봉급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과거 청년취업 시장이 불안할 때는 안정성이 우선시돼 공무원 인기가 높았지만 안정성만으로는 현실에서 살기가 너무 어려워져 주식투자자가 되는 등 새로운 도전을 하는 청년세대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