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공직 청년들] ③ 20대 9급 공무원은 왜 발령 한달 만에 사표를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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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공직 청년들] ③ 20대 9급 공무원은 왜 발령 한달 만에 사표를 썼나
  • 연합뉴스
  • 승인 2022.04.2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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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첫날부터 '멘붕'… "업무 산더미인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어요"
"상사도 '나 몰라라'해 동료 단톡방에 물어"…극도 스트레스 끝 사직

"엄마, 나 지금 지하철에 뛰어들까 봐 너무 무서워."

지난 1월 일선 학교 행정실로 정식 발령받은 9급 교육행정직 공무원 장은주(29·가명)씨가 첫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다 어머니에게 전화로 한 말이다.

장씨는 대학생 시절에는 친구들이 "안 해본 일이 뭐냐"고 할 정도로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 후에는 사기업에서 인턴과 정규직으로 일했다. 그러다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다. 이전까지도 사회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기에 공무원 생활도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과 공무원에 대한 기대는 출근 첫날부터 산산이 깨졌다. 애초 '어느 직장이든 대단한 것 없다'는 생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겪은 일선 교육행정 하급 공무원의 실상은 상상을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육아휴직으로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전임자가 남긴 것은 인수인계 사항을 간략히 적은 문서뿐이었다. 건강보험 전자문서교환시스템(EDI)이라는 용어 자체를 처음 들었지만 당일 바로 시스템을 사용해야 했다. 관할 교육지원청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업무지시가 메신저로 날아왔다. 행정실 상사들은 신규 공무원의 질문에 "모르겠다"거나 "매뉴얼 찾아보라"고만 답할 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누구도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발령 초반 체계적인 현장 교육(OJT)을 받거나 속칭 '사수'가 붙어 1대 1로 친절하게 업무를 알려주는 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댈 곳은 동료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밖에 없었다. 통상 학교 회계는 2월에 마감되므로 장씨가 갓 발령받은 1월은 행정실이 한창 바삐 돌아갈 때였다.

이달 초 연합뉴스와 만난 장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회사를 이곳저곳 다녀봤으니 신입 때는 당연히 힘들다는 걸 알죠. 그래도 '내가 오늘 뭘 해야지'라는 생각은 있어야 하잖아요. 정말 아무것도 없고, 내 앞으로 막 쪽지와 공문이 날아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고, 같은 행정실에서 일하는 분들께 여쭤보면 다들 '모르겠다', '매뉴얼 찾아봐라'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럼 교육행정직 업무별 단톡방에 다 물어보는 거죠."

행정실 직원의 업무는 교직원들의 급여, 퇴직금, 연가보상비, 세무 등 돈을 다루는 일이 많다. 숫자가 틀리면 돈을 지급하거나 받는 쪽에서는 난리가 난다. 담당자에게 금전적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민감한 업무가 금액 산정부터 지급까지 오로지 신규 공무원인 자신 몫이었다고 장씨는 말했다.

장씨가 동기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장씨가 동기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는 "예컨대 급여라고 하면 팀을 나눠 교차 확인하는 과정이 있거나, 전산시스템이 믿을 만큼 확실하면 크게 부담은 안 되지만 학교에서는 돈을 보고 결정하고 내보내는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몫이었다"며 "돈을 다루는 것은 매우 예민한 일인데 신규 공무원에게 너무 큰 책임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행정실 근무자는 장씨 외에 행정실장과 실무자인 계장·교육공무직 직원까지 4명이었다. 인력 사정이 넉넉하지도 않은 와중에 책임자인 실장이 업무에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것도 장씨에게는 의문스러운 모습이었다. 장씨는 "업무분장은 '총괄'로 돼 있는데 사실상 결재 버튼만 누르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일이 몰리니 야근은 잦았다. 그러나 야근수당을 받을 수 없었고, 저녁도 사비로 사 먹어야 했다. 장씨는 "교장 스타일에 따라 다른 것 같지만, 야근은 해야 하는데 근무시간을 올리지는 못하게 했다"며 "야근이 많으면 교장 평가가 좋지 않게 나온다는 말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더라"고 말했다.

공무원 초과 근무·사무원 초과 근무 (PG)
공무원 초과 근무·사무원 초과 근무 (PG)

그래도 장씨는 '꾸역꾸역' 일했다. 뭘 하라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지만, 퇴근 후에도 잠들 때까지 '오늘 해야 했는데 안 한 일이 뭘까', '내일은 또 뭘 수습해야 하나'를 생각하고 또 챙겨봤다. 그런 며칠을 보내노라니 병이 났다.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는데 교장과 교감은 전화해 업무를 지시했다.

'나만 이렇게 힘들게 느끼나'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같은 시기 발령받아 업무를 시작한 동기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느 병원이 진단서를 잘 떼준다더라", "정신과 미리 다녀놔라", "내일이 오는 게 너무 괴로워서 눈물만 난다", "취업사기 당했다"는 대화가 오가다 보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은 점점 커졌다.

스스로 '멘탈이 약한 편은 아니다'라고 자부했던 장씨는 출퇴근 지하철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되자 직장을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결국 발령 한 달여 만에 의원면직을 신청했다.

현재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는 그는 '신규 공무원들이 나약하다'는 말은 정말 듣기 싫다고 한다. 그러나 공직을 빨리 떠난 이유를 물으면 그냥 "월급이 적어서"라고만 답한다. 하위직 일 몰아주기와 부실한 인수인계가 초임 공무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외부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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