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어린이날] 존엄·존중…다시 읽는 어린이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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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어린이날] 존엄·존중…다시 읽는 어린이헌장
  • 연합뉴스
  • 승인 2022.05.0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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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부터 경쟁 내몰린 아이들…"선물로 용돈보다 칭찬과 자유시간"
전문가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되려면 관용 늘어야"
서울도서관 외벽에 어린이날 기념 대형 트릭아트서울시가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도서관 정문 위 대형 게시판인 '서울꿈새김판'을 새로 단장했다고 2일 밝혔다.'어린이들의 꿈이 서울의 미래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트릭아트 그래픽'을 적용했다. 사진은 어린이날 기념 서울꿈새김판 설치 시뮬레이션. 2022.5.2 [서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도서관 외벽에 어린이날 기념 대형 트릭아트
서울시가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도서관 정문 위 대형 게시판인 '서울꿈새김판'을 새로 단장했다고 2일 밝혔다.
'어린이들의 꿈이 서울의 미래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트릭아트 그래픽'을 적용했다. 사진은 어린이날 기념 서울꿈새김판 설치 시뮬레이션. 2022.5.2 [서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으로 존중되며, 아름답게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는다."

1957년 2월 발표된 '어린이헌장'은 어린이의 권리와 복지, 바람직한 성장상을 제시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지켜주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은 2022년 어린이헌장을 되새겨보면, 이상에 닿기에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 100년 전 태동한 아동의 권리…사랑·보호·교육 강조

1921년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해 소년운동을 펼쳤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 역시 인격을 갖춘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리고 새싹 돋는 봄, 5월의 첫날을 어린이날로 선포했다.

일제강점기 어린이날 행사 등이 탄압받았지만 광복 후에 재개됐고, 1946년 이후 5월 5일로 변경된 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어린이헌장과 1991년 11월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한다.

어린이헌장은 어린이가 사랑 속에 자라야 하고, 고른 영양을 취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개인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받을 것과 즐겁고 유익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할 것, 해로운 사회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받을 것, 학대받거나 버림당해서는 안 되고 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않을 것도 포함됐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역시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등 4가지 기본권을 담고 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3일 통화에서 "어린이를 단순한 돌봄 객체로 보거나 소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아직 많은데 아동권리협약에서처럼 아동은 주체로서 당연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어린이헌장1988.5.5 개정선포
어린이헌장
1988.5.5 개정선포

◇ 아동학대·무한경쟁…100년 지난 어린이날 현주소

하지만 100년 전 태동한 아동의 권리는 2022년 현재에도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교수는 "생존, 보호 등 기본권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아동학대 등 사각지대가 많이 남아있다"면서 "GDP 대비 사회복지 투자를 비교해보면, OECD 회원국 평균은 2.4% 정도 되지만 우리나라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제도나 정책을 실행할 때 어린이 눈높이에서 절실한 것들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장정희 방정환연구소 이사장은 "어린이를 위한 각 분야의 쿼터제가 필요하다"며 "인간 대 인간으로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고, 최대한 실현해야 한다. 방정환 선생님도 어른들의 헌 생각으로 어린이들을 교육하려고 하기보다 창조적인 사고를 보호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강조했다.

매일 뉴스 사회 면에 올라오는 학대나 방임 사례뿐만 아니라 지나친 학업 경쟁도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이봉주 교수는 "공부만 외치면 다양성이 사라지고 아동기가 불행해질 수 있다. 흔히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가면 성인 때 행복해진다'고 하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아동기의 행복을 모르면 평생 행복을 모른다'고 나온다"고 지적했다.

서초구에 거주하며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고난영(40)씨도 "아직 저학년이라 그런지 행복해 보이긴 하지만, 종일 숙제와 학원에 치이는 걸 보면 안쓰럽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안쓰러운 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충북 청주에 사는 5년 차 초등교사 김모(27) 씨는 "유튜브 등 간접 경험할 창구가 워낙 많아 오히려 직접 경험할 기회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어린이들이 좀 더 '잘 놀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도 명확하다.

2020년 교육 콘텐츠 전문회사 스쿨잼이 어린이날을 맞아 청소년 396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온라인 설문 결과에 따르면 부모님으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칭찬'(23.7%)이었다. 2위는 용돈(22.7%), 3위는 애정 표현(21%), 4위는 선물(18.4%), 5위는 자유시간(14.1%)이었다.

인천 소재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허모(9) 군은 "어린이날은 쉬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유롭게 놀고 싶다"고, 송모(9) 양은 "오래 잘 수 있어 좋다. 밤새 엄마를 안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덕수초 1학년인 쌍둥이 전태오·리오(7) 군도 "어른들에게 바라는 건 화를 안 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친구들과 많이 놀고 싶다"고 했다.

체육대회하는 어린이들어린이날을 사흘 앞둔 2일 서울 서대문구 금화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체육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체육대회하는 어린이들
어린이날을 사흘 앞둔 2일 서울 서대문구 금화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체육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되려면…"이해하고 포용해주세요"

어린 시절의 행복은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행복의 기초가 된다. 아동기의 행복이 인생의 기초를 형성하는 셈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린이는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여러 역경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데,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그 역경을 잘 극복하기도 하고 그 역경이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은 "어린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부모와 관계가 좋으면 회복 탄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행복을 보장해줄 열쇠는 결국 '관용'이다.

워킹맘으로 6세 아들을 키우는 송미연(42) 씨는 "어른이 듣기에는 아이가 쓸데없는 말들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말을 못 하게 하는 건 폭력"이라며 "아이가 어려서부터 충분히 말을 들어주는 경험을 하면 어른이 돼서 자신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전북 고창의 한 초등학교 교사 정모(38) 씨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른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놀이"라며 "관용이 부족한 시대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부족하니 가장 약한 아이들에게 그 질타가 더 쏠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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