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나이롱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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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나이롱 전성시대'
  • 연합뉴스
  • 승인 2022.05.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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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 자료 놓고 실랑이 벌어진 정호영 청문회장3일 국회에서 열린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정 후보자가 제출한 아들의 MRI 자료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2022.5.3 [국회사진기자단]
MRI 자료 놓고 실랑이 벌어진 정호영 청문회장
3일 국회에서 열린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정 후보자가 제출한 아들의 MRI 자료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2022.5.3 [국회사진기자단]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 가운데 하나가 아들의 병역 판정 의혹이다. 아들 A씨는 2010년 11월 현역(2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5년 뒤인 2015년 11월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4급)으로 바뀌었다. 열흘 전 부친이 재직하던 경북대 병원에서 추간판 탈출 진단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랬던 A씨가 2016년 1월에는 경북대병원에서 환자 이송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이런 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석연치 않은 측면이 있다. 4일 인사청문회에서 한 민주당 의원은 "군대 갈 때만 아프고 평상시는 멀쩡하냐는 말이에요. 이런 말을 병원에서 뭐라고 하냐. 나이롱환자라고 합니다"라고 질타했다. 정 후보자는 도덕적·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나,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자진사퇴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나이롱'은 나일론(nylon)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한 은어로, 진짜가 아니면서 진짜 행세를 하는 가짜를 뜻한다. 흔히 공갈이나 보험금 등의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나이롱 환자'라 하는데, 이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된 단어다. 나일론에 덧씌워진 가짜 이미지는 천연섬유가 아닌 화학섬유인 탓에 겉은 그럴듯하지만, 실제 품질은 떨어지는 데서 유래했다. 유사한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이 엇갈린 것을 두고도 '나이롱 판결'이라고 한다. 우리 언어생활에 파고든 것은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인터넷 지식백과 '나무위키'에 따르면 1957년 6월 6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나이롱 감기', 8월 9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 '나이롱 국물' 등의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횡령이나 배임, 뇌물 등 각종 불법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은 재벌이나 대기업 오너 중에도 나이롱환자로 의심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2006년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이 휠체어에 몸을 싣고 나타났다. 2016년 '비선 실세' 최순실 씨는 검찰 조사를 마친 뒤 구치소로 돌아가는 길에 휠체어를 탔다. 2018년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은 나이롱환자 의혹과 함께 '황제 보석'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씁쓸했다. "호의호식하다가 왜 갑자기 저 타이밍에 아픈 건가?", "한두 번도 아니고 반복되는 패턴에 서글프기까지 하다" 는 반응이 나왔다. 과거 한 여론조사에서 '유명인들이 검찰 출두 시 휠체어를 탄 모습'에 대한 의견을 묻자 75.8%가 "더 괘씸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동정심이 든다"는 대답은 7.7%에 그쳤다.

20대 대선이 0.73% 포인트의 초박빙으로 끝난 이후 여야 모두 협치와 통합을 외쳤지만 현실 정치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74년의 형사사법 체계를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후딱 뜯어고친 것이나, 국민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오직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권의 행태는 '나이롱 협치', '나이롱 통합'에 지나지 않는다. 1993년 가수 신신애는 무표정한 얼굴과 이판사판 춤을 곁들인 노래 '세상은 요지경'으로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됐다. 장관 후보자들의 '아빠 찬스' 논란이나, 검수완박에 이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는 노랫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노래가 30년 만에 음원차트 역주행을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것이 작금의 정치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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