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감염 '주범' 의료기기 세균막, 신물질 '표면 처리'로 차단
상태바
병원 감염 '주범' 의료기기 세균막, 신물질 '표면 처리'로 차단
  • 연합뉴스
  • 승인 2022.05.24 0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성 이온 중합체로 막 씌운 뒤 방사선으로 영구 고정
기기 표면 세균막, 최고 93% 차단 효과
UCLA 연구진, 저널 '어드밴스트 머티어리얼'에 논문
슈퍼버그 MRSA다제내성균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를 2만 배 확대한 전자현미경 이미지.[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 금지]
슈퍼버그 MRSA
다제내성균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를 2만 배 확대한 전자현미경 이미지.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 금지]

사람들은 보통 병원의 위생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대개는 병원에 가서 나쁜 병원체에 감염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병원 내 감염은 보건 의료계의 심각한 위협이 된 지 오래다.

미국에선 한해 약 170만 명이 병원에서 감염되고 이 가운데 약 10만 명이 감염 합병증으로 생명을 잃는다. 여기에 들어가는 직접 비용만 300억 달러에 달할 거로 추정된다.

병원 내 감염의 주범은 의료 기기다. 실제로 약 3분의 2가 의료 기기 감염이다.

예를 들면 카테터(catheterㆍ소변 등을 뽑아내는 삽입 도관), 스텐트(stentㆍ혈관을 넓히는 내관), 인공 심장 판막(heart valve), 심박 조율기(pacemaker) 등이 모두 해당한다.

이런 기기를 몸 안에 넣으면 그 표면이 해로운 바이오 필름(biofilm), 즉 미생물 막(세균막)으로 뒤덮인다.

이런 세균막은 물이 닿는 표면이면 어디나 생길 수 있다. 구강 내 치아 플라크(치태)도 일종의 세균막이다.

문제는 끈끈한 바이오 필름이 세균의 온상이라는 것이다.

바이오 필름의 보호를 받으며 공생하는 세균은 항생제, 세정제, 강산성 용액 등에 잘 죽지 않아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과학자들이 카테터 같은 의료기기의 세균막 형성을 막는 표면 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양성 이온 중합체(zwitterionic polymer)로 기기 표면에 막을 형성한 뒤 자외선을 방사해 영구히 달라붙게 하는 것이다.

이 기술로 표면을 처리하면 바이오 필름을 80% 이상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균 종에 따라 차단 효과는 93%까지 올라갔다.

UCLA의 리처드 카너(Richard Kaner) 생화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9일(현지 시각) 저널 '어드밴스트 머티어리얼'(Advanced Materials)에 논문으로 실렸다.

바이오필름 생성을 막는 표면 처리 기술[펜실베이니아 주립대 Amir Sheikhi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오필름 생성을 막는 표면 처리 기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Amir Sheikhi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초기 임상시험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실리콘 소재의 요로(urinary tract) 카테터를 장기간 사용한 환자 16명에게 테스트했다.

이 가운데 10명이 새 기술로 표면 처리한 카테터를 쓰고 나서 요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답했고, 13명은 새 카테터를 계속 쓰겠다고 했다.

임상 시험에 사용된 카테터는 카너 교수가 설립한 회사의 시제품으로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다.

카너 교수는 "재료 과학자로서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라고 말했다.

임상 시험에 참여한 한 여성 환자는 새 카테터를 쓰고 나서 완전히 삶이 달라졌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기존 카테터는 나흘만 쓰면 막혀 통증이 심해졌고 새것으로 바꾸는 시술을 계속 받아야 했다.

그러나 새 기술로 처리한 카테터는 표면에 물때가 생기거나 막히지 않아 3주에 한 번만 병원에 오게 됐다고 한다.

이 기술의 또 다른 장점은 항생제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테터 같은 의료 기기에 바이오 필름이 형성되면 염증이 재발하기 쉽다.

그래서 의사들은 이런 기기를 장기간 사용하는 환자에게 관행적으로 강한 항생제를 처방한다.

이런 식으로 항생제를 쓰면 치명적인 다제내성균, 일명 '슈퍼버그' 감염 위험을 높인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일찌감치 2014년에 항생제 남용이 세계 보건 의료계의 '급박한 위협'이라고 밝힌 바 있다.

WHO는 또 '포스트 항생제 시대'(post-antibiotic era)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항생제 내성균의 확산을 막지 못하면, 종전엔 간단히 치료됐던 감염증이나 경미한 상처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카너 교수팀이 개발한 표면 처리 기술은 이런 맥락에서도 주목된다.

삽입 또는 이식형 의료기기에 의존하는 환자들을, 병원균의 항생제 저항과 슈퍼버그의 창궐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비의료 분야에 적용될 잠재력도 크다.

예컨대 각종 물 처리 장치의 수명 연장과 리튬 이온 배터리의 성능 향상 등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