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이 없는 전화조차 걸 수 없는 가족들…학동참사 그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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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이 없는 전화조차 걸 수 없는 가족들…학동참사 그후 1년
  • 연합뉴스
  • 승인 2022.06.0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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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22분 사고 현장에서 희생자 9명 추모식
책임자 처벌 없이 맞은 1주기…유가족 "추모공간조차 난항"
책임자 처벌 없이 흐른 1년'학동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 사고 현장 앞을 시내버스가 지나고 있다. 2022.6.8 (사진=연합뉴스)
책임자 처벌 없이 흐른 1년
'학동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 사고 현장 앞을 시내버스가 지나고 있다. 2022.6.8 (사진=연합뉴스)

하늘로 떠난 아홉 명의 전화번호는 그사이 주인이 바뀌었다.

남겨진 가족은 '엄마', '아빠', '아들', '딸'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했던 이들에게 그리움을 담아 전화조차 걸 수 없게 됐다.

그날의 비극은 청춘이 바쳤던 노력도, 곱돌 굽잇길을 걸어온 한평생도 헛된 공허함으로 뒤바꿔버렸다.

시민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학동참사'가 9일 1주기를 맞았다.

비극은 1년 전 오늘 오후 4시 22분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 앞 버스정류장에서 일어났다.

희생자 아홉 명은 철거 공사 중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에 깔린 시내버스의 승객이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열여덟 고등학생,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를 만나러 가던 막내딸, 아들 생일에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던 어머니 등이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었다.

정류장 옆 아름드리 가로수가 운전기사와 다른 승객 등 생존자 8명을 구한 참극이었다.

1년이 흘러 사고 발생 시각 참사 현장에서는 희생자 9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은 지난 1년을 매일 밤 그리움과 설움을 눈물로 삭이며 보냈다고 돌아봤다.

이진의 유가족 대표는 추모사에서 "차마 떼어내지 못한 어머니의 영정사진 아래 쭈그려 앉아 고인을 위한 추모사를 쓰고 있자니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진다"며 "악몽에서라도 우리 엄마를, 아버지를, 우리 딸, 내 아들을 다시 보고 싶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책임자 처벌조차 이루지 못한 채 참사 1주기를 맞는 심정을 함께 전했다.

이 대표는 "진상규명 재판은 아직 1심 판결도 마무리되지 못했다"며 "피의자와 증인은 재판을 참관하는 유가족을 조롱하거나 진술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탄했다.

참사 이후 공사가 중단되면서 잡초로 뒤덮이고 폐허로 남겨진 철거 현장을 바라보는 착잡한 마음도 감추지 못했다.

상흔 간직한 참사 현장'학동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 사고 현장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2022.6.8 (사진=연합뉴스)
상흔 간직한 참사 현장
'학동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 사고 현장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2022.6.8 (사진=연합뉴스)

이 대표는 "당연히 주어질 것으로 믿었던 추모공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난항에 봉착했다"며 "삼풍백화점 자리에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선 역사가 우리에게 반복될 것 같아 원통하다"고 토로했다.

학동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광주공동체는 여전히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그 이유는 참사 책임자들의 사과와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1주기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대책위는 "참사의 핵심 원인 제공자인 현대산업개발에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한다"며 "우리 사회가 안전 사회로 나아가도록 추모공간 마련, 사회적 공헌 활동, 기업 문화 개선 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철거건물 붕괴참사'로도 알려진 학동참사는 재개발사업이나 현대산업개발이 발주한 철거 공사와 관련 없는 시민이 희생된 사회적 참사였다.

검경 수사와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다단계 재하도급이 만연하고 해체계획서를 따르지 않은 불법 공사가 붕괴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됐다.

붕괴 직접 책임자로 지목된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하도급·재하도급 업체 관계자, 감리자 등 9명에 대한 형사재판은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총체적 붕괴 원인 규명을 위한 경찰 수사는 재개발 비리 의혹 관련자 31명을 대상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이 발의한 20여 개 후속 법안 가운데 '학동참사 방지법'으로 불린 상주 감리제 도입안(건축물 관리법 일부개정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철거 공사 원청사인 현대산업개발이 받은 2건의 8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은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효력이 정지되거나 과징금 4억600여 만원으로 대체돼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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