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이재명 수사 '흑고니'인가 '회색코뿔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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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이재명 수사 '흑고니'인가 '회색코뿔소'인가
  • 연합뉴스
  • 승인 2022.09.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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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입니다"…문자확인하는 이재명 대표[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쟁입니다"…문자확인하는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니는 순백색의 물새다. 한자로는 백조(白鳥)다. 희지 않은 고니는 없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서양에서는 블랙스완(흑고니)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하는 시어(詩語)였다. 그런데 몇 세기 전 호주에서 부리가 붉고 몸통은 온통 검은빛인 흑고니가 발견됐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이후 블랙스완은 있어서는 안 될 일,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쓰는 용어로 의미가 다소 변했다. 경제학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주는 위기를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하지만 희귀하고 전례가 없다는 뜻에는 큰 차이가 없다.

회색코뿔소는 블랙스완과 정반대 의미다. 덩치가 2t에 달하는 코뿔소가 멀리서 쿵쾅거리고 뛰어온다. 땅의 진동과 소리로 코뿔소가 다가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WPI) 소장이 2013년 다보스 포럼에서 제시한 회색코뿔소 이론은 위험한 징후가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2008년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미연방수사국, 국제결제은행 등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와 위험 신호를 잇달아 보냈는데도 이를 간과하고 실질적 대안을 내놓지 않다가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진 것이다.

검찰이 1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1년 6개월 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될 때 불거진 성남 대장동·백현동 비리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가 대선 때 허위발언을 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다. 이 대표는 작년 10월 국정감사 때 "박근혜 정부 당시 국토교통부가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을 해 준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한 시민단체가 이를 허위사실이라고 고발했다. 감사원도 "국토부의 협조 요청은 있었지만, 강제성도 협박도 없다"고 했다. 검찰은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는 6개월이어서 시효 만료 3일 전인 6일 이 대표를 소환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례 없는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소환 통보는 '정치보복'이라며 심지어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거세게 반발했다. 대표 취임 나흘 만에 그것도 정기국회가 시작된 첫날 야당 대표에게 소환장을 보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경고했던 사람은 많았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강조했던 박용진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전대 기간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같은 동료 의원으로서 무죄이길 바란다. 혐의도 없고 깨끗하길 바란다"면서 "그러나 눈에 보이는 리스크를 없다고 주장하고, 안 보인다고 얘기한다고 해서 리스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이 의원에 대한 정치 보복일 수도 있고 동시에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적 리스크라고도 본다"며 "그게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인 수사 결과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겠지만 회색 코뿔소인 것은 맞다"고 했다.

대선 이후 민주당이 여론의 반발 속에서도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밀어붙이고, 패배한 대선 후보가 두 달 만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어 다시 당 대표직에 오르고 그 와중에 기소 시에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당헌을 일부 개정한 것 등을 놓고 '방탄용'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 친이재명계(친명계)도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회색코뿔소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 대표 쪽이나 민주당 친명계의 속내는 다가오는 회색코뿔소를 블랙스완으로 바꿔버리겠다는 심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다가올 위기에 치밀히 대응했다는 점에서 '이재명 사법리스크'는 회색코뿔소 위기를 제대로 극복한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용진 의원 말대로 검찰 수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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