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안전운임제 확대'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 이미 소득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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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안전운임제 확대'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 이미 소득이 높다?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2.12.0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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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 "월임금 500만∼600만원 상회"…임이자 의원 "소득 굉장히 높아"
곡물운송 화물운전자 월소득, 고용부 조사선 525만원…화물연대는 409만원
고용부가 '조사서 빠졌다'고 한 차량할부금 반영하자 525만→405만원으로 줄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파업(집단 운송거부) 사태가 점차 장기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업무 복귀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적용 확대를 요구한 품목에 종사하는 화물차 운전자들의 소득 수준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화물연대는 컨테이너와 시멘트 등 이미 2개 품목에 도입된 안전운임제를 ▲ 위험물 ▲ 곡물·사료 ▲ 자동차 운송(카 캐리어) ▲ 철강 ▲ 택배 지·간선 등 다른 5개 분야로 확대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요구사항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이들 분야 종사자들의 소득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 "(확대 요구 업종인) 철강이나 위험물 등 운송 분야는 월 임금 수준이 500만∼600만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라며 "처우 개선 관련 절박성이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도 지난달 28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철강이나 유류차 있지 않습니까, 운반차량. 이런 부분들은 소득이 굉장히 높아요. (조사) 결과를 보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지난달 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500만원대라고 하는 소득의 근거는 부풀려져 있다"며 "(하루) 14∼16시간까지 일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이므로 시급으로 환산했을 때는 그렇게 고소득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화물 운전사들의 소득 수준을 놓고 정부와 화물연대의 평가가 각각 다른 셈인데, 어느 쪽 얘기가 사실에 더 가까울까?

화물연대와 2차 교섭 시작한 국토부
화물연대와 2차 교섭 시작한 국토부

양측이 각자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검증을 해봤다.

국토부에 따르면 원 장관 발언의 근거는 올해 6월 고용노동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용역을 맡겨 작성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의 기준 보수액 및 평균임금 등 산정을 위한 소득수준 실태조사'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화물차 운전자의 산업재해보험료와 보험금 산정을 위해 작성된 것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이 보고서에는 확대 요구 5개 품목 중 원 장관이 구체적으로 지목한 철강과 위험물 분야는 빠져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업종 확대 요구를 앞두고 올해 품목별 화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조합원을 상대로 소득 실태를 조사했다.

고용부 보고서의 조사 목적이 보험금 산정을 위한 것이라면 조사 대상자 입장에선 소득을 최대한 늘리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화물연대는 조사 목적상 조사 대상자들이 축소 지향적으로 소득을 밝혔을 수 있다.

그러나 두 조사 모두 화물운송 계약서나 세금 관련 서류 등 문서를 바탕으로 수치를 산출하지는 않았다. 서면·대면 인터뷰 등을 통해 화물 운전자들이 자발적으로 밝힌 금액을 파악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보고서는 총매출액과 비용, 그리고 이 둘의 차액인 순수익을 모두 조사했지만 화물연대는 총매출액과 소득액을 묻는 방식으로 조사를 벌였다.

이런 면에서 두 조사 모두 엄격하게 산출된 액수는 아니라는 한계를 갖는다.

[표] 고용노동부-화물연대 소득 조사 결과 비교

(※고용노동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기준 보수액 및 평균임금 등 산정을 위한 소득수준 실태조사'와 화물연대본부 '안전운임 확대를 위한 조합원 실태조사'를 취합한 자료임.)
(※고용노동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기준 보수액 및 평균임금 등 산정을 위한 소득수준 실태조사'와 화물연대본부 '안전운임 확대를 위한 조합원 실태조사'를 취합한 자료임.)

5개 확대 요구 품목 가운데 고용부 보고서를 기준으로 가장 소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자동차 운송과 곡물·사료 부문의 월 평균 소득을 보면, 자동차 운송 운전사는 527만9천원, 곡물·사료 운전사는 525만4천원으로 각각 파악됐다.

원 장관의 발언대로 월임금이 500만∼600만원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화물연대 조사에선 자동차 운송 운전사가 월 평균 363만원, 곡물 운반 운전사는 월 409만원을 각각 버는 것으로 집계됐다. 각각 164만9천원, 116만4천원의 격차가 나는 셈이다.

두 조사에서 '매출'에 해당한다고 할 월 평균 소득액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순소득에선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사 수치에 각종 세금이나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4대 보험료, 차량 할부금 등이 포함됐는지를 확인하자 상황이 좀 달라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보고서가) 보험료 산정을 위해 만들어진 자료이기 때문에 수치가 일부 느슨하게 집계됐을 수 있다"며 순소득에 차량 할부금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조사 결과가 세금과 보험료 등을 납부하기 전 액수인지, 납부 후 수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화물연대는 조사 결과가 세후 금액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화물연대 조사는 고용부 조사보다 표본 수가 226명 더 많다는 점에서 실태를 좀 더 잘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화물차주들은 통상 영업을 위해 고가의 화물차를 할부로 구입한 뒤 화물을 운반하고 번 수입으로 할부금을 몇 년에 걸쳐 갚아나간다. 할부금을 모두 상환하면 화물차는 차주의 재산으로 남지만 운행 과정에서 감가상각이 일어나고, 할부금에 포함된 이자도 비용으로 나가게 된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차량 할부금은 화물차 운전자들이 유류비 다음으로 많이 지출하는 항목이다.

화물연대 박귀란 전략조직국장은 "보통 차량을 구매하면 10년 정도 사용하는데 할부금은 5∼6년에 걸쳐 나눠 갚는다"며 "실제 노동자들이 납부하는 할부 금액은 월 3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다만 화물차는 되팔아 돈으로 바꿀 수 있으므로 차량 할부금 전액을 비용으로 치긴 어렵다.

이에 따라 안전운임을 산정하는 화물차 안전운임위원회는 현재 안전운임제가 시행 중인 시멘트·컨테이너 업종에 대한 월 평균 차량 할부금으로 120만원을 인정하고 있다. 차량의 감가상각비 104만원에 금융비용(이자) 16만원을 합친 금액이다.

화물연대 박연수 실장은 연합뉴스에 "추가로 요구한 5개 품목의 차량 할부금은 현재 안전운임제를 적용 중인 두 품목보다 더 높으면 높지, 낮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부가 조사한 자동차 운반·곡물 운전자의 월 순소득에서 안전운임위원회가 산정한 차량 할부금을 차감하면 이들의 소득은 각각 407만9천원, 405만4천원으로 낮아진다.

화물연대의 조사 결과와 견주면, 곡물 운전자의 소득은 화물연대 액수보다 3만6천원이 외려 적어지고, 자동차 운반 운전자의 경우 격차가 44만9천원으로 좁혀진다.

'500만∼600만원을 상회한다'는 원 장관의 발언과는 괴리가 큰 데다 '고소득'으로 보기엔 어려운 금액이다.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하라'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 신항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 앞에서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한 노조원이 안전 운임제 품목 확대 촉구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2022.11.29 (사진=연합뉴스)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하라'
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 신항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 앞에서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한 노조원이 안전 운임제 품목 확대 촉구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2022.11.29 (사진=연합뉴스)

화물차 운전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고려하면 고소득 주장은 현실과 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고용부 보고서를 보면 자동차 운송 운전자의 월 평균 종사일수는 23일, 곡물 운반 운전사는 25일로, 여기에 한국교통연구원이 조사(2021년 화물운송시장 동향 연간보고서)한 일반 화물차주의 일 평균 노동시간인 12시간을 적용해 계산하면 자동차 운송 운전자의 시간당 평균 소득은 1만4천700원, 곡물 운반 운전자의 시급은 1만3천500원이다.

이는 고용부가 조사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평균 시간당 임금 1만9천806원(e-나라지표·2021년)보다 크게 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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