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꺾이지 않는 마음",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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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꺾이지 않는 마음",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2.12.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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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이 돌아왔다. 지난 보름여 간 한국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역할을 했다. 잇따르는 경제위기 경고와 이태원 참사로 얼어붙어 있던 국민의 마음을 따뜻이 녹여줬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태극전사들을 목청 높여 응원하게 만든 치료제이자 청량제가 됐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회자하고 있는 문구다. 16강 진출이 걸린 포르투갈전에서 승리한 뒤 대표팀 선수들이 들어 올린 태극기에 적혀 있던 이 문구를 본 많은 이들은 벅찬 감동을 받았다.

2-0으로 뒤지고 있던 가나전에서 그림 같은 조규성의 연속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며 가나를 추격했을 때나, 16강전 진출이 점점 멀어져 가던 포르투갈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끝내는 후반 추가시간 연출했던 기적 같은 손흥민→황희찬의 역전골,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후반에 보여줬던 백승호의 그림 같은 중거리 슛에서 국민은 태극전사들의 '꺾이지 않은 마음'을 확인했다.

당초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에서 10년의 도전 끝에 이 종목에서 우승한 프로게이머 인터뷰를 계기로 처음 등장했던 이 문구는, 이제 '언더독의 반란'이라는 강력한 서사와 함께 전 국민이 의미를 되새기는 경구가 됐다. 2002년 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는 우리의 희망은, 20년 뒤에는 결과보다 좀 더 과정에 무게를 둔 '중꺾마'의 외침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 문구를 되뇌며 불확실성 시대의 복판에서 불안한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딘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은 '중꺾마'의 정신과 통한다. 베라가 뉴욕 메츠 감독 시절이었던 1973년 내셔널리그 동부디비전에서 꼴찌를 하고 있을 때 한 기자의 질문에 답했던 이 말은, 그해 베라의 말처럼 메츠가 기적적으로 동부디비전 1위를 차지하며 단숨에 유명해졌다. '꼴찌의 반란'이 이뤄진 것이다.

인생에서 한두 번 좌절을 맛보지 않는 이들은 별로 없다. 좌절에 직면했을 때 더욱 중요한 것이 불굴의 의지일 것이다. 시련과 고통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전진해 나간다면 결과를 떠나 그는 이미 승리자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되돌아본다. 실패를 용인하고 관용으로 대하고 있는 사회인가. 한 번의 실패에 실패자로 낙인찍고 냉대하지는 않는 사회인가. 태극전사들이 1승도 못 거두고 돌아왔다면 어떤 평가가 내려졌을까. '꺾이지 않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실패에 관대한 문화, 실패에서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사회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흔히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라고 얘기한다. 발명왕 에디슨은 생애 1천93개의 특허를 받은 발명품을 남겼지만, 그 10배, 100배의 실패를 거듭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매년 10월 13일은 '세계 실패의 날'이다. 2010년 핀란드의 학생·기업가 집단 알토이에스(AaltoES)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제안한 뒤 세계로 확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행사가 열려오고 있다. 실패 경험의 자산화 및 재도전을 지지하는 정책과 문화의 확산이 목적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 전반이 좀 더 실패에 관용적인 분위기가 될 때 '중꺾마'의 빛은 제대로 발산할 것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며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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