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아닌 항쟁" 군불 지피는 5·18 민주화운동 명칭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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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아닌 항쟁" 군불 지피는 5·18 민주화운동 명칭 변경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2.12.1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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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투쟁·의거·봉기, 혼재하다 정치적 타협으로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에 맞춰 '항쟁' 등으로 변경 목소리 나와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PG)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PG)

5·18 민주화운동의 명칭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점화하고 있다.

5·18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할 때 지금의 명칭만으로는 5·18의 의미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5·18은 40년 넘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정치·사회적 환경이나 역사적 평가에 따라 다양하게 불려왔다.

5·18이 발생했을 때 신군부는 이를 '광주사태'라고 지칭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한 시민들의 행위를 폭동으로 몰아간 신군부의 시각이 담긴 명칭이었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광주 시민들을 포함한 민주 진영에서도 5·18을 광주사태라고 칭하기도 했으나 여기에 담긴 의미는 정반대였다.

계엄군의 만행을 규탄하고 광주시민의 피해를 표현할 때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계엄군이나 독재정권을 상대로 한 시민들의 저항 행위를 나타내려고 할 때는 '시민의거'나 '민중항쟁', '민중봉기'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5·18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모인 최초의 유족회 이름도 '5·18광주의거유족회'였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상당기간 다양한 명칭들이 혼용돼 왔다.

광주사태 또는 민중항쟁 등이 민주화운동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8년 정치적 타협에 따른 것이다.

당시 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에 몰린 집권당(민정당)은 5·18 진상규명과 5공 비리 청산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에 놓였다.

민정당은 야당이 '광주 민주화투쟁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하자 '투쟁'이라는 용어 대신 '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고 야당은 이를 수용했다.

명칭을 무엇으로 하느냐보다 지금까지 왜곡되고 폄훼되던 5·18의 진실 규명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여야 합의로 1988년 6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듬해 2월까지 열린 광주 청문회에서 신군부가 왜곡하던 '광주사태'의 진실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나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광주사태'를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명예 회복과 보상,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이때부터 정부는 광주사태 대신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했다.

이어 민주화운동 특별법이 마련돼 법적으로도 '민주화운동'이 명칭으로 정립됐다.

그 이후 '광주사태'라는 명칭은 신군부 시각에 동조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왜곡과 폄훼의 표현으로 규정됐다.

1980년 5월 광주[연합뉴스 자료사진]
1980년 5월 광주
[연합뉴스 자료사진]

비슷한 시기 민주 진영에서는 '운동'이 아닌 '항쟁'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목숨을 내던질 정도의 격렬하고 숭고했던 저항과 희생을 단순히 '민주화운동'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투쟁에 나선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던 만큼 항쟁의 주체도 '민중'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시각을 반영해 5·18 부상자들이 모인 단체는 공식 명칭을 '5·18광주민중항쟁 부상자회'로 바꾸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5·18 명칭에서 '광주'를 빼자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시위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남 목포 등으로 확대됐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 사건인 점을 고려하면 5·18을 광주만의 항쟁으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또 지역감정을 무기로 한 정치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지역성을 강조하는 명칭을 빼자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민주진영의 요청에 김영삼 정부는 5·18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광주를 빼고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이라고 명명했다.

이때부터 공식 명칭은 '5·18 민주화운동'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진영에서는 상당수가 광주항쟁 또는 5월 항쟁이라고 부르고 있고, 일부 단체는 공식 명칭 대신 민중항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 남아있다.

5·18 기념재단은 5·18 헌법 전문 수록에 앞서 이러한 역사성을 가진 5·18의 명칭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며 논의에 불을 지피는 토론회를 최근 열기도 했다.

5·18 기념재단 조진태 상임이사는 18일 "5·18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문제는 현재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적이나 지역적인 눈치를 보지 않고 5·18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에 맞게 새로운 명칭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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