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지구에 '인류세' 도래했나…공식 논의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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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지구에 '인류세' 도래했나…공식 논의 본격화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2.12.2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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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증명후보지·시점 투표…후년 부산 총회서 정해질 듯
'인간이 지구 근본적 변화, 현재 위기는 지구적 문제' 상기
폭우로 사라진 갑천 징검다리지난 8월 16일 오전 대전시 갑천 물이 불어나 산책로 징검다리가 형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잠겨있다. 대전에는 전날 오후 6시부터 이날 오전까지 65.5㎜의 폭우가 쏟아졌다. 2022.8.16 (사진=연합뉴스)
폭우로 사라진 갑천 징검다리
지난 8월 16일 오전 대전시 갑천 물이 불어나 산책로 징검다리가 형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잠겨있다. 대전에는 전날 오후 6시부터 이날 오전까지 65.5㎜의 폭우가 쏟아졌다. 2022.8.16 (사진=연합뉴스)

인류가 지구에 심대하고 깊은 영향을 끼치면서 1만1천여년간 이어진 '현세'(現世)를 바꿀 상황에 이르렀다. 인류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지 결정이 후년 한국에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기후위기는 시대가 달라졌다는 증거 중 하나로 꼽힌다.

25일 학계와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국제층서위원회(ICS) 산하 제4기층서소위원회 인류세워킹그룹(AWG)은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라는 지질시대에 들어섰는지 확인할 후보지를 선정하고 인류세가 시작했다면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 등을 정하는 일련의 투표에 돌입했다.

투표는 내년 봄께 마무리될 전망으로 이후 현세를 인류세로 볼지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 2000년 제안된 인류세…"기후위기가 핵심 증거"

지난 6월 22일 미국 네바다주 미드호가 말라 물에 잠겨있던 보트가 드러난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6월 22일 미국 네바다주 미드호가 말라 물에 잠겨있던 보트가 드러난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지질학적으로 현재는 '현생누대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이다.

홀로세(Holocene)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현재까지'로 기간으론 약 1만1천700년이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라는 뜻에서 제안된 개념이다. 인간의 활동이 마치 운석이 지구에 충돌한 것처럼 기후 등에 뚜렷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 흔적이 지각에 남아 지질시대를 바꿔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인류세란 용어는 1980년대 미국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이 2000년 현재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다.

크뤼천은 '국제지권생물권프로그램'(IGBP) 일원으로 지구시스템 변화를 연구하다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나 토양 속 질소 함량 등이 홀로세 관측 범위를 벗어나고 있음을 확인한 뒤 그 원인이 '인간의 활동'에 있다며 인류세를 제안했다.

인류세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2000년 크뤼천과 스토머가 IGBP 소식지에 함께 발표한 짧은 기고문에서다.

이후 인류세라는 용어가 대중에게까지 널리 확산한 이유는 기후위기 등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집약한 상징적 단어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세 도래의 강력한 증거로 꼽히는 기후위기가 체감되는 일이 늘면서 관련 언급이 더 증가했다.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진은 올해 초 발간한 '인류세 도래에 따른 녹색전환의 가치와 중장기 전략 발굴 연구' 보고서에서 "기후위기는 인류세로 지칭되는 새로운 지질시대 도래를 알리는 핵심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류세는 나날이 가속되는 환경위기를 효과적으로 포착하는 메타포이자 위기의 원인을 인간 활동에서 찾아 즉각적인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규범적 개념으로 기능한다"라고 설명했다.

6월 26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그레벤브로이흐 인근 발전소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6월 26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그레벤브로이흐 인근 발전소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세를 인류세로 규정한다면 시작점이 언제인지 규정해야 하는데 아직 학계 내 의견이 갈린다.

한국환경연구원 보고서와 2016년 지질학회지에 실린 논문 '인류세의 시점과 의미' 등에 따르면 학자들이 제시한 인류세 시작점은 크게 3~4개로 분류될 수 있다.

우선 농경과 인류세가 함께 시작했다는 의견이 있다.

농경으로 식생이 변하면서 멸종되는 생물이 늘어나고 지구의 순환과정에 변화가 생겼으니 농경의 시작을 인류세 시작점으로 보자는 것이다.

증기기관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세가 시작했다는 의견도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류의 발전이 빨라졌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도 가파르게 상승한 점에 주목한 의견이다.

1945년 인류 첫 핵실험이 인류세 시작점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일부는 미국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에서 최초 핵실험이 이뤄진 1945년 7월 16일에 인류세가 시작했다고 날짜를 못 박기도 한다. 1960년대까지 이어진 핵실험으로 전 지구 지층에 방사능 입자들이 남았는데 이는 '인류가 지구에 남긴 가장 강한 흔적'으로 꼽힌다.

첫 핵실험과 비슷한 시기인 1950년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때'를 인류세 시작점으로 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인간의 활동을 '자본주의 확장'으로 구체화해 이를 인류세 시작점으로 삼자는 학자들도 있다. 이 경우 유럽이 미주를 발견하고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한 1450년이나 북미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뤄진 16세기 등이 인류세 시작점으로 주장된다.

다만 인류세워킹그룹은 2019년 5월 투표로 인류세 시작점을 '20세기 중반'으로 합의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당시 소식을 전하면서 20세기 중반을 '급격한 인구증가가 산업생산 속도와 농약사용 등 다른 인간 활동을 가속하는 가운데 첫 핵폭탄 폭발이 전 지구 지질과 빙하에 방사능 잔재를 뿌린 시기'라고 설명했다.

◇ '성급하다' 지적도…'환경위기는 행성 차원 문제' 상기

현세를 인류세로 새로 규정하는 것이 너무 성급하고 '정치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1945년에 인류세가 시작했다고 한다면 이제 겨우 77년이 됐다.

홀로세는 2009년 국제지질과학연맹에 의해 '1만1천650년±699년' 전에 시작한 것으로 정리됐다. 77년이면 '홀로세 시작점 오차범위'의 10분의 1 정도로 지질학적 관점에선 '찰나'와 같다.

2016년 지질학회지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지난 70년간 형성된 해양퇴적층 두께는 1㎜에 불과한데 전 세계 지층에서 인류세 기록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남욱현 박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논의가 한참 더 필요한데 인류세워킹그룹이 서두르는 바가 없지 않다"라면서 "인류세를 도입하기로 하면 반대 의견도 엄청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구를 지켜주세요지난 10월 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올림픽공원에서 신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원환경운동연합,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온다와 함께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2022.10.6 (사진=연합뉴스)
지구를 지켜주세요
지난 10월 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올림픽공원에서 신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원환경운동연합,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온다와 함께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2022.10.6 (사진=연합뉴스)

지질학계가 인류세를 공식화하든 하지 않든 인류가 지구에 심대하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에서 인류세란 말은 계속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세란 말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전염병 확산 등 인류가 마주한 위기를 통합적으로, 또 '행성(지구) 차원의 문제'로 바라보고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진은 "인류세는 환경위기 공간 규모를 행성(지구) 단위로 확장해 인간의 어떤 활동도 행성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한다"라고 강조했다.

남 박사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인간과 지구를 분리해 생각하고 자본주의하에서 인간이 지구의 자원을 빼 쓰는 관계를 형성했다"라면서 "인류세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데 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논의 추세를 고려하면 2024년 8월 부산에서 개최될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인류세 관련 논의의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난 11월 16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진행되는 동안 시위대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11월 16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진행되는 동안 시위대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남 박사는 "인류세 논의가 언제 끝날지 기약은 없다"라면서 "인류세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부산 총회쯤에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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