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한 명꼴로 저문 청춘…'고립무원' 청년들의 쓸쓸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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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한 명꼴로 저문 청춘…'고립무원' 청년들의 쓸쓸한 죽음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2.12.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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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청년 200여 명 고독사…사회적 고립에 극단적 선택 대다수
"취업 만능설은 어불성설…정교한 연구, 다양한 주체 관심 필수"
고독사 (PG)
고독사 (PG)

"마지막으로 남긴 삶의 흔적을 정리하다 보면 외로움을 넘어 고립감이 느껴져요. 배달 음식에, 술병에, 약봉지에…. 청년들이 더는 고독하게 스러지지 않도록 제대로 된 예방책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16년째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하는 구찬모(40) 대표는 지난 10월 서울의 세 평 남짓한 좁은 원룸에서 짧은 인생을 스스로 마감한 20대 청년 A씨의 '마지막 이사'를 도왔다.

복용하던 우울증 약들과 널브러진 옷가지와 술병, 어느새 유품이 되어버린 수집품들이 나뒹구는 그곳은 마치 도시 속 외딴섬과도 같았다.

이처럼 A씨와 같이 혼자 살다 쓸쓸히 세상을 떠나 뒤늦게 발견된 청년은 지난 5년간 1천여 명에 이른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2021년 동안 전체 고독사 중 2030 세대가 6.3∼8.4%를 차지해 매년 200여 명의 청년이 유명을 달리했다.

고독사 예방법에 따르면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시신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청년층의 경우 중·장년층의 고독사에 비해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고독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독사 중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숨진 비율은 20대 56.6%, 30대 40.2%로 전체 평균인 17.4%를 크게 웃돌았고, 나이가 어릴수록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고독사 비중이 높았다.

고독사한 고인이 거주하던 원룸 내부[구찬모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독사한 고인이 거주하던 원룸 내부
[구찬모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취업이 능사 아니야"…사회적 고립이 낳은 '외로운 죽음'

"청년 고독사 예방 피켓 시위 게시글을 SNS에 올리면 악성 댓글이 많이 달려요. '힘든 일 안 하려고 하니까 일자리가 없는 거 아니냐', '의지 부족이다' 이런 식으로요. 고독사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나태함으로 귀결시키지 않았으면 해요."

청년 고독사 예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청년단체의 대표인 마재광(36)씨는 청년 고독사가 단순히 정신 건강, 성격, 가정사 등 개인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도 취업난으로 대표되는 경제 문제에 더해 주거 문제, 사회 복지 격차, 1인 가구 증가 등 여러 사회구조적 문제가 맞물리면서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품 정리회사를 운영하면서 10년째 고독사 예방 교육을 다니는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28일 "청년들의 문제를 일자리만 해결되면 될 거라는 '취업 만능설'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교육·주거·경제·인구 문제 등 다양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얽혀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역할 지연과 상실,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경제적 충격, 치열한 경쟁,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등과 함께 작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고독사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사회와 연결되지 못하고 내부적·외부적으로 고립된 청년들이 점차 '생'(生)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고립된 삶은 '정서적 유품'으로 분류되는 휴대전화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구 대표는 "가끔 유가족 요청으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는데 통화기록이나 메모장에서 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겪었을 정서적 고립감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의 고독사 실태조사를 담당한 고숙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보장정책센터장은 "그동안 사회적 고립은 노인의 문제로 인식됐으나 청년의 사회적 고립 역시 적지 않다"며 "이런 탓에 고독사 문제는 사회적 고립 청년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고독사 현장에서 유품, 쓰레기 등을 정리하는 업체[구찬모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독사 현장에서 유품, 쓰레기 등을 정리하는 업체
[구찬모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일반화는 금물…정교한 연구, 다양한 주체 관심 필수"

"고독사에도 징후가 있어요. 그렇게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과 징후를 세대별, 성별, 지역별, 상황별로 다양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하나하나의 죽음이 다른데 그 죽음들을 경제적 어려움, 우울증 등으로 일반화해버리니 죽음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는 거죠."

김석중 대표는 청년들의 고독사 이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교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사후약방문식 대응책이 아닌 제대로 된 예방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경찰청으로부터 청년 고독사와 관련한 최근 5년 치 정보를 넘겨받아 고독사 현황과 특징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고숙자 센터장은 "지금까지는 고인의 지인 진술에만 의존해 분석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다"며 "현재 여러 복지·행정 데이터 등을 활용해 청년 고독사의 징후, 패턴 등을 분석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다양한 주체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 센터장은 "청년들의 사회적 고립과 고독사 문제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여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며 "공적 영역은 물론 민간에서도 체계적인 방안과 양적·질적 서비스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립 위기에 처한 청년 발견 시 신고 체계부터 상태를 살피는 돌봄 체계,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 체계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기 위해서는 '작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같은 생활권역인 지역사회에서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강원 원주시, 충북 청주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고립 청년 실태 조사와 이들의 복지 향상, 사회 재진입 지원책 마련 등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변사 사건으로 통제 중인 출입문[구찬모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변사 사건으로 통제 중인 출입문
[구찬모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대표는 "전국의 사례를 수집해 지역에 맞는 방법으로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려 한 일본의 '고립사 제로 프로젝트'를 참고해 국내에서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고독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봄 직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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