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국민연금 '탈석탄 선언' 2년…다짐만 있고 이행 없었다
상태바
[이슈 In] 국민연금 '탈석탄 선언' 2년…다짐만 있고 이행 없었다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03.07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석탄 투자 "6조∼10조원 추산"…투자 배제기준안 의결 계속 미뤄
환경단체 "말로만 탈석탄"…연금측 "올해안에 구체적 방안 마련"
환경운동연합, '국민건강 해치는 국민연금'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일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중단을 촉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지난 10년간 미세먼지가 나오는 석탄산업에 10조원을 투자해 국민의 건강 피해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2021.4.20 (사진=연합뉴스)
환경운동연합, '국민건강 해치는 국민연금'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일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중단을 촉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지난 10년간 미세먼지가 나오는 석탄산업에 10조원을 투자해 국민의 건강 피해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2021.4.20 (사진=연합뉴스)

"기후위기는 가장 취약한 지역과 계층, 어려운 이웃들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해 결국은 모든 인류의 삶을 위협할 것입니다. 이런 기후문제 해결을 위해 전 세계가 저탄소 경제로의 대전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민연금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배출 감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석탄채굴·발전산업에 대한 투자제한전략을 도입할 것을 선언합니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2021년 5월말 '탈(脫)석탄 선언'을 하면서 내놓은 선언문의 일부 내용이다.

국민연금은 이 선언을 통해 국민의 안정적 노후소득을 책임지는 장기투자자로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과 지속 가능한 사회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탄소 중립사회로의 전환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처럼 거창하게 발걸음을 뗐지만, 그후 2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탈석탄 선언에 걸맞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칫 빈말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국민연금은 자산순위 글로벌 10번째 국부펀드이자 국내 주식시장 6%, 국내 채권시장 10%를 보유한 국내외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 작년 상반기 단계적 시행기준 마련한다고 했지만…감감무소식

국민연금은 환경에 나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겠다고 선언하면서 국내외 석탄채굴·발전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거나 배제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 방안을 제시하며 탈석탄 이행 의지를 내비쳤다.

먼저 2021년 하반기에 대상 산업의 범위와 기준, 대상 기업 선정방식 등 세부 시행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학계·기업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해 2022년 상반기 중으로 단계적 시행방안을 마련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하는 추진 일정을 공개했다.

당시 연구용역을 맡은 딜로이트안진이 작성한 용역보고서는 기업 전체 매출에서 석탄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또는 50% 이상일 때 투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3개 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은 국내 시장에서는 석탄산업 투자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등 점진적으로 시행안을 적용하되, 해외 시장에서는 즉시 시행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2021년 5월 탈석탄 선언 이후 2022년 5월 석탄투자 배제 기준안에 대한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를 받고 나서도 현재까지 투자배제 기준안 의결을 미루는 등 구체적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석탄 가격과 석탄 기업의 가치가 올라서 국민연금이 석탄산업에 투자한 자산을 팔아 손실 없이 회수할 수 있는 최적기를 맞았지만, 의사결정 지연으로 절호의 매각 기회마저 놓쳤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석탄투자 배제 기준안을 의결하지 않고 미적거리면서 중장기적으로 가치 하락이 명약관화한 석탄 및 관련 기업 매각 기회를 상실한 일은 추후 연금기금 손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연금기금의 수익성은 물론, 국민경제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올해 안으로 탈석탄의 구체적 이행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그만, 석탄발전 대탈출'26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석탄발전 대탈출!' 탈석탄법 제정 캠페인 선포식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2020.8.26 (사진=연합뉴스)
'기후위기 그만, 석탄발전 대탈출'
26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석탄발전 대탈출!' 탈석탄법 제정 캠페인 선포식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2020.8.26 (사진=연합뉴스)

◇ 환경단체들 "국민연금은 '말로만' 탈석탄"…조속한 이행 촉구

석탄산업에 대한 투자를 어떻게, 얼마나 줄일지에 대한 기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는 줄지 않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훈식 의원실에서 파악한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현황 자료를 보면, 석탄 자산의 정의나 조사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략 6조∼10조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해외 부문 투자는 탈석탄 선언 이후에도 증가세다.

국민연금의 석탄 관련 투자액은 2021년 기준 기금 순자산(948조원)의 0.63∼1.05%에 해당한다.

환경단체들은 국민연금의 탈석탄 정책이 '말로만' 정책에 머물고 있다며 탈석탄 선언을 실현할 구체적 석탄투자 제한 기준을 하루속히 확정해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만 '그린워싱(greenwashing ·실질적인 친환경 경영과는 거리가 있지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솔루션, 플랜1.5, 환경운동연합 등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한정애·김성주·최영희 의원 등과 공동으로 지난달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연금과 기후대응 토론회'를 열어 석탄 투자제한 전략 도입을 미루고 있는 국민연금을 압박했다.

이들 단체는 "석탄 투자제한 전략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금융 위험을 관리하는 첫 단추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세계의 주요 연기금과 투자기관들이 이미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금융의 탄소중립을 향해 움직이는 상황을 고려해 국민연금도 석탄투자제한 기준을 확정하는 등 조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중순 기후솔루션, 환경운동연합, 플랜 1.5, 녹색연합 등 170여 개 시민단체는 '탈석탄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효적인 정책 도입에 미온적인 국민연금에 공개서한을 보내 석탄 매출 비중 30% 이상 기업에 대한 투자 배제 등 5대 요구사항을 전달한 바 있다.

이들 시민단체는 "해외 주요 연기금은 탈석탄 이행을 넘어 화석연료, 특히 석탄자산이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아 위험관리 차원에서도 화석 연료 전반에 대한 투자 배제 정책을 펴고 있다"며 "국민연금도 하루빨리 이런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 투자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