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몸은 파김치, 마음은 행복…섬마을 천사 박정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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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몸은 파김치, 마음은 행복…섬마을 천사 박정애씨
  • 연합뉴스 기자
  • 승인 2023.12.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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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편 잃고 30여년 지역 봉사활동…"남을 돕는 것은 축복"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마음은 더 행복해져요"

"봉사활동은 나에겐 축복"…(뒷줄 왼쪽 세 번째가 박정애씨)
[신안군 제공]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시간여 남짓 가면 환갑을 훌쩍 넘긴 중년의 박정애(64) 씨가 30년 넘게 이웃에 봉사를 베푼 섬마을, 신안군 신의도가 나온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옆 섬마을에서 신의도로 시집을 온 박씨에게 섬 생활은 쉽지 않았다.

집 밖에서는 염전 일에다 농사까지, 집에 오면 시부모와 어린 6남매까지 챙겨야 하는 고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매사에 긍정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박씨는 그 힘든 시집살이에도 이웃을 챙기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박씨는 마을 부녀회에서 봉사활동 하는 것을 시작으로 신의면 자원봉사회, 중학교 자모회 활동 등 이웃과 지역사회의 일이라면 앞장섰다.

2001년 신안군민의 날에는 '충효도의(忠孝道義)' 부문에서 군민의 상을 받기도 했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병든 남편과 고령의 시부모 봉양에, 중증 장애가 있는 아들까지 알뜰히 살뜰히 보살핀 것에 대한 주위의 격려였다.

온몸이 마비돼 몸져누운 남편을 수년간 병시중하던 때였는데, 무심하게도 큰 상을 받고 넉달 후 남편이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염색 봉사활동
[신안군 제공]

박씨는 "내 나이 마흔셋이었는데 일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지만, 마냥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엄마의 도움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아들부터, 시부모까지 챙기고 감당해야 할 일이 눈앞에 그대로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힘을 얻은 박씨는 2만평에 달하는 염전과 벼농사까지 짊어지고 나갔다.

특히 이웃에 대한 본격적인 봉사활동도 이때부터 더 열심히, 더 많이 다녔다.

염전에서 소금 채취 작업을 하다가도 봉사할 일이 생기면 곧바로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내가 힘을 내고 활기차게 남편이 하지 못한 몫까지 살아야 자식도, 시부모도 축복받을 거라는 믿음이 한층 강해졌다"며 당시 봉사활동의 마음을 전했다.

그해(2012년)에는 자원봉사자회 신의면 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바르게살기 협의회, 지체장애인 협의회, 여성단체 협의회 등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았다.

홀로 사는 노인이 많은 섬 지역 특성상 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집안 곳곳 청소부터 시작해 옷과 이불 빨래, 머리 염색과 미용 등 하루 종일 허리를 펼 수 없다.

함께 간 회원과 함께 벽지도 발라주고 전깃불이나 깨진 유리창도 갈아 끼워 주기도 한다.

혹여 도움의 손길에서 빠진 이웃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봉사위원과 역할을 분담해 해결해주는 마을 수호천사 역할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요즘은 홀로 사는 노인에게 끼니 해결에 필요한 식료품을 가져다주고 안부를 살피는 일도 해오고 있다.

"맛있게 잘 드셔야 할 텐데…"
[신안군 제공]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그동안 엄마의 손길, 아빠의 정을 많이 느끼지 못했을 아이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착하게 잘 커 준 것이 한없이 기쁘고 고맙다"며 "아빠가 없다 보니 애들도 일찍 철이 든 것 같아 항상 미안했다"고 말하며 눈가를 훔쳤다.

"이웃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언제든 달려갔다"는 박씨는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내겐 큰 축복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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