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최순실 '연설문 개입' 파문과 박 대통령의 사과

2016-10-25     연합뉴스

 '청와대 비선 실세'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의혹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이 최 씨 의혹이 불거진 이후 공식 사과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미르ㆍK스포츠재단 등 최 씨를 둘러싸고 제기된 대통령 관련 의혹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었으나 한 방송이 대통령의 각종 연설문 작성에 최 씨가 관여한 의혹을 폭로하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파문을 수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 씨와 관련된 의혹이 증폭하면서 국정 블랙홀과 조기 레임덕으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JTBC는 지난 24일, 최 씨가 사용한 컴퓨터에서 박 대통령 연설문 44개를 포함해 모두 200여 개 파일을 입수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통일대박론을 주창했던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2014년 3월)과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사(2013년 5월) 등은 발표 하루 전에 최 씨에게 전달됐다는 것이다. 파일에는 국무회의 발언 문건이나 비서실장 등 참모진 인사 내용까지 있었다고 보도했다. 최 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 씨가 "회장(최순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고 했다"는 지난 19일 보도에 뒤이은 폭로다. 문서의 유출자로는 '대통령의 청와대 최측근 참모'를 지목했다.

박 대통령은 최 씨의 연설문 관여 의혹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박 대통령은 직접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ㆍ홍보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또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공식 라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의 최 씨가 청와대로부터 각종 연설문 등을 수시로 공식 발표전에 받아 보고 의견을 반영했다면 그 자체로 심각한 정보 유출이자 국기 훼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한 단순한 '호가호위'가 아니라 최 씨가 국정에 관여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연설문을)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 파문이 수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 씨의 대통령 연설문 개입설이 처음 보도됐을 때 청와대는 '말이 되는 소리냐,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국정의 신뢰성에 큰 상처가 났다. 좀 더 일찍 청와대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고 이해를 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야권과 여권 비주류 일각에서는 이를 '대통령 연설문의 사전검열', '국정농단', '국기문란' 등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와 특검까지 요구했다. 최 씨를 둘러싼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검찰에 최 씨 일가의 신병 확보 등을 통한 전면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최 씨 관련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거지면서 박 대통령이 제안한 '임기 내 개헌'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다. 야권은 박 대통령이 모든 개헌 논의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이 최순실 의혹의 늪 속에 깊숙이 빠져드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사과는 했으나 문제의 수습책이나 법적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우선 박 대통령의 사과와는 별개로 문건 유출과 관련한 진상조사와 국민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후속조치가 따라야 한다.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 등 최 씨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 비선실세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측근 비리나 의혹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일이 더는 없도록 이번에 모든 것을 털어낸다는 각오로 접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