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운명처럼 돌아온 광주에서 필연처럼 한풀이
상태바
김기태, 운명처럼 돌아온 광주에서 필연처럼 한풀이
  • 연합뉴스
  • 승인 2017.10.31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8년 인하대 진학하며 광주 떠나 쌍방울·삼성·SK에서 선수생활
탁월한 리더십으로 KIA 8년 만의 우승 이끌고 '영웅 등극'
▲ KIA, 8년 만의 한국시리즈 정상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 KIA가 한국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두산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뒤 김기태 감독과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모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기태(48) KIA 타이거즈 감독은 광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야구를 시작한 서림초등학교 5학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고, 타격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광주 야구 명문교인 충장중과 광주제일고를 졸업했다.

지금이야 좋은 선수는 고교 졸업 직후 바로 프로에 뛰어들지만, 1980년대만 해도 대학에 진학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김기태는 4년 뒤 해태 타이거즈 입단을 그리며 1988년 인하대에 입학, 처음으로 광주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광주에 돌아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왼손 거포 김기태를 눈여겨보고 있던 해태는 1991년 드래프트에서 우완 투수 오희주 쪽으로 급선회했고, 신생구단 쌍방울 레이더스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을만한 좌타자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 프로야구 한화:쌍방울 戰 2일 전주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쌍방울의 경기. 2회말 쌍방울 김기태가 중월 솔로홈런을 친 후 이종도 코치로부터 환영을 받으며 3루를 돌고 있다./박일 //1996.5.2(전주=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6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기태의 야구 인생은 화려했다. 쌍방울(1991∼1998년), 삼성 라이온즈(1999∼2001년), SK 와이번스(2002∼2005년)에서 프로 통산 타율 0.294, 249홈런, 923타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타이거즈와 인연은 닿지 않았다. 선수 시절 '보스', '형님'으로 불리며 빼어난 리더십을 보여준 김기태는 지도자로도 승승장구했지만, 처음 지휘봉을 맡긴 구단도 LG 트윈스였다.

세상에는 운명을 가장한 필연이 있다. 2014년 가을, KIA 구단은 부진한 성적에도 선동열 감독과 2년 재계약을 발표한다.

팬심은 들끓었고, 광주가 낳은 최고의 야구 영웅은 구단을 떠났다. 그 자리를 김기태가 감독으로 채우게 됐다.

LG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김기태는 어렵게 돌아온 고향에서 능력을 꽃피웠다. '형님 리더십'에서 한발 더 나아가 2군 무명 선수의 둘째 아이 이름까지 기억하는 '교감 리더십'으로 선수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눈시울 붉힌 김기태 감독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가 7대6 KIA의 승리로 끝났다. 우승을 차지한 KIA 김기태 감독이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IA 감독 첫해였던 2015년에는 성적보다 타이거즈의 '승리 DNA'를 심는 데 주력했다. 성적은 8위, 가을야구는 또 실패했지만, 선수들 마음에는 '감독님을 위해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2016년 KIA는 5위로 포스트시즌 막차를 타 5년 만에 가을야구를 치른다. 이 경험이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2017년 가을, 김기태는 울보였다. 정규시즌에 우승했을 때 한 번, 한국시리즈에 우승했을 때 또 한 번 울었다.

그는 눈물로 한풀이했고, 그의 눈물에 우승에 목이 말랐던 KIA도 한을 풀었다.

29년 전 광주를 떠났던 김기태는 이제 광주의 야구 영웅이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