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와 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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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와 氣
  • 윤정한 위원
  • 승인 2015.07.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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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한 공학박사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조선시대 유학(儒學)의 중심은 성리학(性理學)이었고 성리학의 중심에는 이기론(理氣論)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선 성리학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리학(性理學)이란 유교에서 고대(古代) 진시황제(秦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의해 유교의 경전이 소실되거나 자취를 감춘 후 다시 유가(儒家)들의 노력으로 숨어 있는 경전(經典)들을 찾아 한자(漢字)의 한자(一字) 한자(一字)의 뜻을 파악하여 번역하는 훈고학(訓詁學)적 유교(儒敎)룰 거쳐 송대(宋代)에 송나라의 정호(程顥), 정이(程頤)형제와 주희(朱熹)에 의하여 집대성된 신유학(新儒學)과 도교(道敎)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개념을 받아들여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리학을 주자학(朱子學), 정주학(程朱學), 정주 성리학(程朱性理學), 정주이학(程朱理學) 또는 송학(宋學), 이학(理學) 또는 도학(道學)이라고도 부릅니다. 참 많은 이름으로도 부릅니다.

성리(性理)를 좀 더 간단히 말하면, 하늘의 이치를 천리(天理)라 하고 땅의 이치를 지리(地理)라고 하는 반면에 인간의 이치를 성리(性理)라고 합니다. 성리학이란 어원은 주자의 성즉리(性卽理)에서 비롯되었으며 이(理)와 기(氣)를 토대로 우주의 생성과 구조, 즉 우주의 근원과 이치, 인간 심성의 구조와 심성향상 그리고 자기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조선의 성리학은 고려(高麗)말 안향(安珦)에 의해 수입되어 안향, 백이정, 권보, 우탁, 이제현 등으로 이어지다가 이곡, 이색 부자(父子)와 정몽주, 정도전, 이숭인 등으로 이어져 조선 성리학의 토대가 이루진 후 이 언적(李 彦迪), 이 황(李 滉), 이 이(李 珥) 그리고 기 대승(奇 大升) 등에 의해 꽃을 피웁니다.

조선에 들어온 이후 사람의 이성(理性)을 강조하는 주리설(主理說)과 사람의 감성을 강조하는 주기설(主氣說)로 발전하였고,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갈라져 심한 논쟁을 벌였던 것입니다. 주리설은 영남지방의 이 언적, 이 황(李 滉), 조식, 유 성룡, 김 성일 등에 의해 발전 계승되어 영남학파(嶺南學派)를 형성하였고, 주기설은 서 경덕, 기 대승, 성혼, 이이(李 珥) 등에 의해 발전되어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은 이황(李 滉)이 강하게 주장하였고,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은 이이(李 珥)와 기 대승(奇 大升)이 강하게 주장하여 두 개의 이론이 조선 중기와 후기 사회의 논쟁의 중심이었고, 이로 인해 분별없는 유림(儒林)들에 의해 붕당(朋黨)이 발생하게 되어 나라를 혼란으로 빠져들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학문이 학문으로 계승 발전된 것이 아니라 지방색과 학연을 중심으로 발전되면서 붕당을 형성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 붕당은 있는 것입니다. 즉 이념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정당을 만들어 정권(政權)을 잡아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붕당은 특정지역과 특정인의 학연을 중심으로 자기들의 생각을 펼쳐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려는 편협한 생각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이(理)는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는, 요즘의 용어로 바꾸면 원리(原理)이고 기(氣)는 운동성이 있는 힘(에너지)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현대의 과학적 용어로는 양자(陽子)와 전자(電子)로 대치(代置)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理)는 양자(陽子)에 해당되고 기(氣)는 전자(電子)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양자는 움직임이 없으나 전자는 운동을 합니다. 따라서 이와 기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원자가 있으면 양자와 전자가 존재 하듯이 이기는 일원(一元)도 아니고 이원(二元)도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굳이 일원론과 이원론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를 받는다면 일원론(一元論)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석에는 남극과 북극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대자석에서 북극을 절단하면 남극이 나타나지 않고 또 다시 남극과 북극이 생기듯이 이(理와) 기(氣)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이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연구하는 이기일원론자도 이기이원론자도 이와 기는 불상리(不相離), 불상잡(不相雜) 즉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섞이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원이 있고 이원이 있겠습니까?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었던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이기론(理氣論)에 따른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논하는 것이 최고의 학문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사림(士林)들이 이 논쟁에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해 학문 자체가 너무 편협해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 후기에 태동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하는 학문이 조선 학문의 주류를 이루었다면 조선은 일제(日帝)의 침략도 중국의 간섭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나라에도 크나 큰 영향을 미쳐 오늘 우리는 다른 환경에서 당당한 세계의 일원(一員)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지금부터라도 편협한 학문 세계에 얽매이지 말고 넓고 깊은 학문 세계로 나아가 후대(後代)에 부끄럽지 않는 선배(先輩)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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