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파국 '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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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 파국 '출구가 없다'
  • 조병주 기자
  • 승인 2015.09.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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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설립 이후 42년 만에 최장 파업
8일째 직장 폐쇄, 매출 손실 '눈덩이'
본교섭-노사대표자 면담 등 '올 스톱'
270여 협력사, 1300여 대리점 줄피해
"지역 경제-회사 위한 상생의 결단을"

▲ 금호타이어 노조가 금호타이어 사태와 관련해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에게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사측을 비난하고 나섰다. 사진은 직장폐쇄로 출입구가 차벽으로 봉쇄된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전경.
광주 경제의 버팀목 중 하나인 '타이어 강자' 금호타이어가 결국 파국에 직면했다.

'끝장 교섭'이 번번이 결렬되면서 노사 설립 42년 만에 최장 파업, 최장 직장 폐쇄 기록을 갈아치웠다. 설상가상으로 본교섭은 5일째, 대표자간 단독협상은 사흘째 중단된 상태다.

노사가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사이 협력사와 대리점의 연쇄 피해는 현실화되고, 지역민의 '반(反) 금호타이어' 정서는 커지고 있어 대타협을 위한 상생의 퇴로가 절박한 상황이다.

◇한 달 넘긴 파업 vs 1주일 넘긴 직장 폐쇄

기업재무개선작업(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8개월 여 만에 노조가 파업의 깃발을 치켜든 지 13일로 32일째다. 4일 간의 부분 파업에 이어 8시간 전면 파업이 28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파업은 1989년과 1994년 파업을 뛰어 넘는 역대 최장기다. '1994년 파업'은 광주·전남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6월 하순부터 한 달 간 진행됐다. 3대의 헬기와 중장비, 35개 중대의 전투경찰 등 공권력에 노조원들은 바리게이트와 타이어로 맞섰고, 공장에서 쫓겨난 노조원들은 전남대에 집결해 투쟁을 이어갔다.

'1989년 파업'은 노조의 75%, 사측의 16% 임금 인상안이 부딪히면서 태업과 고발, 휴업, 징계 등의 진통을 겪으며 32일 만에 막을 내렸다.

2014년도 임단협 타결 당시 '불씨'로 남아 있던 임금협상이 결국 올해 노사갈등의 뇌관이 되면서 1973년 노사 설립 이후 42년 만에 최장 파업 기록을 갈아치워게 됐다.

회사 측이 맞불로 놓은 직장 폐쇄는 4년6개월 만으로, 통상 1주일 안에 해제됐던 것과 달리 이번엔 1주일을 넘어서 장기화 조짐마저 낳고 있다.

◇본교섭-대표자 교섭 무산

금호타이어 노사는 지난 5월27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17차례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임금피크제와 연계한 일시금 지급 규모와 무노동 무임금 보전 여부 등을 놓고 평행선 대립이다.

본교섭은 지난 8일 이후 중단됐고, 대표자 협상도 9일부터 이틀간 김창규 대표와 허용대 대표지회장 간 1대 1 끝장 교섭으로 진행됐지만 합의 도출엔 실패했다. 추가 협상도 미지수고, 열리더라도 극적 타결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허 지회장은 '무노동 무임금'에 대한 임금손실액이 1인당 300만원을 넘어선 만큼 보전 방법으로 사측이 제시한 일시금 300만원에 플러스 알파(+α)를 요구한 반면 김 대표은 장기 파업으로 손실이 발생한 만큼 일시금 상향은 어렵다는 원칙론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말에 이어 휴일인 이날도 노조원들이 자택파업을 벌여 대타협의 기회는 14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지난 달 21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을 찾은 김창규 사장(사진 오른쪽)이 노조 파업으로 대체 근무를 하고 있는 현장관리자와 일반직 사원들을 격려하는 모습.
◇대립각 노사, 고소·고발戰

사측은 최근 "노조 측이 직장 폐쇄 후 집회 등을 이유로 운동장 시설물을 무단 훼손했다"며 노조 대표지회장과 곡성지회장, 일반 노조원 등 모두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또 원재료 입고와 제품출하를 위해 사용중인 임시출입문을 차량으로 막아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 일부 노조원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노조도 맞대응했다. 불법 대체근로를 문제삼아 김 대표 등을 광주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전면파업 이후 대체근로자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이미 퇴직한 협력업체 직원을 생산라인에 투입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또 지게차 운전기사 중 일부가 무자격자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매출-협력사-대리점 '빨간불'

노사가 전면 파업과 직장 폐쇄로 맞서는 사이 매출 손실은 1200억원에 육박하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른 파업조합원들의 임금손실액도 1인당 350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공장 가동률은 20%를 밑돈다.

530여 특화유통망(타이어프로)를 비롯한 1300여 대리점과 광주·전남 190개를 포함, 전국 270개 협력사는 한 마디로 '죽을 맛'이다. 공장으로부터 교체용타이오 공급이 원활치 않으면서 재고가 바닥나고 있다.

한 협력사 대표는 "1년이 멀다하고 터지는 분규로 가슴이 미어지는 일도 한두 번 아니었는데 올해는 (파업이) 전에 없이 길어지면서 피해가 눈덩이"라고 말했다. 피해는 1차 협력사 뿐 아니라 3차 협력사로 까지 이어지고 있어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찮다.

◇"우리만의 분규 드라이브(?)"

이번 분규는 의아스런 대목도 적잖다.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임금인상에 대한 노사간의 현격한 의견차, 워크아웃 돌입이나 1970년대식 노조탄압과 같은 '빅 이슈'가 없는 상황임에도 갈등의 골은 되레 깊다.

노조 한 간부는 "드러난 쟁점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300만원의 일시금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다. 지난 5년간 워크아웃 기간에 억눌렸던 노동자 권리와 노조 위상회복을 위한 상징적 투쟁"이라고 말했다. "워크아웃 때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사측이 이제 와서 경쟁력과 생산력 운운하니 수긍하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무노동 무임금에 따른 손실액이 노조가 요구한 일시금 규모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조합원들이 현장 복귀를 독려하는 회사측 문자메시지에 동요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측 태도도 워크아웃 전과 사뭇 다르다. "조용한 게 좋다"며 파업 관련 대응을 극도로 자제하던 사측이었지만, 워크아웃 졸업 후엔 180도 바뀌었다.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노조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입장을 알리고, 위법행위에 대해선 가차없다.

"더 이상 노조에 끌려 다닐 수 없다" "오래된 노동운동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게 기본 판단이다. 노사 모두 '워크아웃 학습효과'가 협상 태도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워크아웃 기간에 곯은 상처와 수 십년 쌓여온 노사 불신이 서로를 옥죄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금호타이어 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한 지난달 17일 오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노조원들이 파업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등 돌린 소비자…"대타협 만이 살 길"

올해 상반기 금호타이어 직원 1인당 매출액은 3억700만 원으로 1년 전보다 12.4% 감소했다. 금액으로도 4300만 원이 줄어 감소액이 국내 타이어 3사 중 가장 많다.

소비자 반감도 크다. 한 공기업 직원은 "몇일 전 타이어를 교체할 일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넥센으로 갈았다"며 "요즘 금호타이어를 한국 또는 넥센으로 갈아타려는 직원들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아무래도 노사 갈등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지역 시민단체와 정치권, 경제계, 협력사들 사이에서는 "단 하루 이틀 만이라도 파업과 직장 폐쇄를 풀고 전향적으로 집중 교섭에 나서거나 대표자 추가 협상을 통해 대타협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역 국회의원들과 원로들이 소신있는 대안과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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