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과 ‘심상(心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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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과 ‘심상(心相)’
  • 신현호 편집인대표
  • 승인 2013.10.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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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호 편집국장
상상력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그 죄의 유무를 따지기 전에 창의적 문화예술이 무한한 자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의 틀에 관상이란 매력적인 소재를 융합시킨 영화 <관상>이 성공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요즘 케이블TV에서 연예인과 유명인사의 얼굴을 놓고 부자상이니 권력상이니 하며 마치 얼굴에 이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양 설명하며 관상도 바꿀 수 있다면서 방송을 하고 있지만 영화 <관상>은 그런 얄팍한 호기심의 자극이 아니라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관상가 내경은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들어 있으니 그 자체가 우주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얼굴은 우주이다. 얼굴에 눈, 코, 입, 귀, 두뇌의 모든 감각기관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반대편에 섰던 내경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기 위해 내경이 보는 앞에서 아들을 죽이며 “조선 최고의 관상가가 어찌 자식의 단명은 몰랐을꼬”라고 비꼰다. 한마디로 관상은 없다는 결론으로 관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고 영화 <관상>을 보는 관객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런데 영화 <관상>의 진실은 따로 있다. 조선 세종은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각장애인 지화에게 벼슬을 주었는데 지화의 직업은 바로 점술가였다. 지화는 궁궐을 드나들며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위한 점을 쳤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모함해서 왕후의 집안을 몰락시키는 일도 지화가 했다. 역심을 품고 있다는 점괘 하나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지만 그런 점괘를 만든 것은 지화가 아니라 외척 세력을 제거하려는 상왕 태종의 불안증이었다.

권력의 맛을 본 지화는 세종의 노여움을 사서 귀향을 가게 되지만 문종이 다시 그를 불러들인다. 병약한 문종과 어린 단종으로 정국이 혼란해지자 과연 누가 왕이 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였기에 지화의 점술에 의지하려 했는데 지화는 안평대군이 임금이 될 운명이 있다고 점을 쳐준다.

하지만 결과는 수양대군이 승리한다. 그리하여 지화는 안평대군과 함께 처형을 당한다. 지화는 왜 안평대군 편에 섰을까? 안평대군이 먼저 지화를 불렀기 때문이다. 안평대군은 단종 1년에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양이 안평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관상도 아니고 점괘도 아닌 인내심 때문이다. 수양대군은 단종 3년에 양위 형식으로 권좌에 오른다.

지화는 사람의 운명을 내다보는 능력은 있었지만 자기 운명은 모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권력에 도취되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 곳곳에 이런 역사적 배경이 숨어 있다.

우리가 이런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분노를 삭이며 인내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왕도라는 사실이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이니 심상(心相)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열일곱 살 되던 해 매관매직이 난무하는 과거시험의 폐단을 경험하고는 글공부를 접었다. 부친의 권유로 관상과 풍수를 배우기 위해 ‘마의상서’라는 책을 접하지만 더욱 실망에 빠졌다. 자신의 얼굴을 관상학에 맞춰보니 어느 한 군데도 귀격(貴格)·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천격(賤格)·빈격(貧格)·흉격(凶格)밖에 없었다. 그나마 책의 한 구절이 백범의 마음을 다잡게 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관상학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인물을 가려 쓰기 위해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굴의 생김새를 보고 사람 됨됨이는 물론 운명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때 중국 유학생들이 들여와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성행했다. 비과학적 비판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지만 그래도 귀가 솔깃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영화 ‘관상’이 개봉 한 달도 채 안돼 관람객 800만 명을 돌파하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점도 이 같은 방증이다.

따라서 영화 <관상>의 키워드는 관상을 믿지 않는 내경의 아들이 과거시험 준비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냐는 면접관 질문에 ‘운명에 체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답변이다. 운명에 체념하지 않는 것이 다름아닌 도전인데 단언컨대, 도전을 할 때는 욕심과 분노를 버리고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영화 <관상>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메시지이다.

‘관상불여심상 심상불여덕상(觀相不如心相 心相不如德相)’, 즉 관상은 마음상만 못하고, 마음상은 덕상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바른 마음과 행동은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스코틀랜드 작가인 사무엘 스마일스도 일맥상통한 말을 남겼다. ‘마음을 바꾸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달라지고, 습관을 바꾸면 성격이 달라지고, 성격을 바꾸면 운명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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