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천하질서, 고립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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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천하질서, 고립되는 중국
  • 광주데일리뉴스
  • 승인 2016.06.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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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연합뉴스 논설위원

40여 년 전 피 터지게 싸웠던 미국과 베트남이 최근 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충격적이다. 베트남은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았지만 중국과 맞서기 위해 미국과 손을 잡았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현실주의 노선이 돋보인다.

베트남만이 아니다. 필리핀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물론 인도까지 남중국해와 인도양 일대의 주요국들이 중국과 대결구도를 형성하며 미국, 일본과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다. 이들 국가는 중국의 경제력이 급속히 커지고, 이를 토대로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자 한 때 중국 쪽으로 기우는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최근엔 등을 돌리고 있다.

영토분쟁과 중국의 안하무인 행태 때문이다.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의 군사적 공세는 나날이 강도를 더하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내해(內海)라고 할 수 있는 파라셀제도(중국명 시사군도), 메이클즈필드뱅크(중국명 중사군도),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

중국은 영유권을 '주장'만 하는 게 아니다. 2012년 7월 이들 도서와 인공섬을 관리하기 위해 싼사시라는 행정도시까지 만들어 시청사를 두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남중국해의 80% 정도가 중국의 수중에 들어간다. 중국이 최신 무기와 함대를 앞세워 남중국해에서 무력시위를 하면서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어선들을 쫓아내고 있다. 이들 국가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2010년은 중국 역사에 길이 기록될 해였다. 그해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자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이 충돌한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 사태에서는 무역보복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 중국으로서는 1895년 청일 전쟁 패배로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일본에 내준 이후 115년 만의 극일(極日)이었다. 이미 당시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침몰론이 부상한 터였다. 중국은 단숨에 G2로 올라섰다. 세계패권을 향한 중국의 굴기가 본격화한 것은 그때부터라고 봐야 한다.

▲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지역인 센카쿠 열도

하지만 반동이 있었다. 일본에서 중국에 우호적인 민주당 정권의 몰락을 앞당기고 아베 신조 우익정권을 잉태시킨 곳이 센카쿠다. 20년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일본을 각성시키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바뀌게 한 사건이 바로 센카쿠 사태였다.

중국은 아편전쟁(1842년)에서 패해 서구열강에 뜯기기 전까지 2천 년 가까이 천하의 중심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이 내세운 엄격한 위계질서에 순응해 조공을 바치며 생존을 도모했다. 중국은 힘을 앞세워 이런 천하질서를 아시아에서 다시 복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세계의 경찰인 미국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리 없다. 지구상에서 미국에 위협이 될만한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현재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중국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패권의 꿈을 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국가다.

지난 5년여 아시아 패권 경쟁에서 힘의 추는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의 위압적 자세에 거부감과 위기감을 느끼게 되자 급속하게 미국, 일본에 접근하고 있다. 관용이 없는 막무가내의 중국보다 항해의 자유와 국제 규범을 내세운 미국이 좋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불만을 가진 국가들을 아우르며 견고한 대 중국 포위망을 구축해 가고 있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

상황이 이렇게 흐르는 것은 중국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지금처럼 해상 영토에 집착하는 한 고립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중국에 확실하게 기운 나라는 김씨 왕조의 북한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 정말 패권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면 시대착오적인 대국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군사력이나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함도 버려야 한다. 동아시아의 주요국 가운데 중국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지역의 트러블메이커인 북한을 내세워 한국을 주무르겠다는 행태를 이젠 청산해야 한다. 주변국을 대등한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모든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웃에 호령하던 200년 전의 중국이나 아시아를 피로 물 들였던 제국주의 일본의 전철을 밟으려 해선 안 된다.

중국은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는 정체됐고, 고도성장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거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해안지역과 내륙의 빈부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주민 불만은 커지고 있다. 공산당 일당 통치와 부패, 경직된 관료주의는 중국의 도약에 암적 존재다. 이런 불만과 부조리를 이웃 국가들과의 갈등으로 덮으려는 것은 위험하다.

중국은 세계 각지에서 공자(孔子)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다. 중국이 주변국으로부터 기대고 싶은 제국으로 인정받으려면 군림하려 들지 말고 인과 덕(德)을 실천하면 된다. 30∼50년 후면 모를까 아직은 미국과 패권을 겨룰 실력이 안 된다는 걸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2008년의 금융위기 충격을 이겨낸 미국은 여전히 젊고 패기 있는 국가인 반면 중국은 저출산 고령화로 늙어가고 있다. 경제도 군사도 미국을 쫓아가기엔 한 참 멀었다. 미국과 군비 경쟁을 하다 무너진 옛 소련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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