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고리대출에 허덕이던 청년에 손 내민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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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고리대출에 허덕이던 청년에 손 내민 금감원
  • 한정원 기자
  • 승인 2016.06.15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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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과 학자금대출 채무조정 중재…빚 문제 해결 도와
금융사 20~30년 경력 민원처리 전문인 38명 활동
▲ 금융감독원을 찾은 민원인들이 서류를 접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너무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매일 밤 잠을 설칩니다. 도움을 받을 곳이 없나 찾다가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지난달 17일 오후 금융감독원. 여느 때처럼 금감원에 접수된 민원을 분류하던 안용섭(59) 민원처리 전문인에게 다른 민원서보다 훨씬 긴 글이 눈에 띄었다.

9년 전 저축은행에서 빌린 대학 학자금 연체이자를 갚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대 후반 여성 A씨의 편지였다.

A씨가 빌린 돈은 학비 500만원. 연 이자율 35%의 고리(高利)였다.

취직한 A씨는 3년 동안 이자로만 원금 5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성실히 갚았지만, 직장을 잃으며 일이 틀어졌다. 원금 상환을 못 하게 되자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올해 재취업한 A씨는 어렵게 다시 저축은행에 연락했다. 빚을 갚기 위해서다.

저축은행도 다행히 채무 재조정을 해주기로 했다. 신청서와 함께 560만원을 변제하면 된다고 했다.

이제 빚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300만원을 더 납부해야 한다는 저축은행의 연락이 왔다.

채무 재조정 신청서에 실수로 '최근 소득'을 '연간 소득'으로 환산하지 않고 적어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저축은행은 A씨가 채무를 회피하려고 소득을 낮췄다고 본 것이다.

일과 학업을 병행한 A씨의 힘겨운 삶, 고금리 대출에 대한 후회, 그런데도 성실하게 빚을 갚으려는 의지, 저축 계획 등이 민원서를 본 안용섭 전문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안 전문인은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려는 청년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져 일종의 소명의식 같은 게 생겼다"며 "금융회사가 민원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경직적 태도를 취할 때 이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곰곰이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 안용섭 금감원 민원처리 전문인에게 온 민원인의 감사 선물. 사진=연합뉴스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다음날 바로 저축은행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A씨의 채무상환과 자활 의지, 성실성을 들어 '이 청년을 도와주는 게 어떻겠냐'고 한참을 설득했다.

저축은행 담당자도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추가 조사나 청구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금감원에선 지난달부터 안 전문인과 같은 전문인력 38명이 민원을 받고 있다.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일인데도 처리 기간이 2∼3개월씩 걸리는 불편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민원처리 전문인들의 '스펙'은 쟁쟁하다.

안 전문인은 작년 6월 말 금감원 부국장으로 퇴직했다가 재취업해 민원처리 업무를 하고 있다.

2년 계약직인 민원처리 전문인은 금융회사에서 관련 업무를 10년 이상 했거나, 15년 이상 재직한 경력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

전문인들의 평균 연령대는 50대 중후반이다.

30년 가까이 은행, 보험사, 증권사에서 활동한 전직 금융인들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우진 금감원 민원처리센터 팀장은 "민원처리 전문인들은 풍부한 근무 경험으로 생활금융에 대한 지식이 많다"며 "금융거래에 불편함을 느끼는 민원인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서비스 마인드에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민원처리 전문인력을 도입한 금감원은 평균 42일이 걸리던 민원 회신 기간을 14일 이내로 단축했다. 하반기에 40명의 민원 전문인을 추가로 뽑을 예정이다.

다른 민원처리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안 전문인에게 최근 건강보조식품 한 박스가 배달됐다. A씨였다. 감사한 마음에 선물을 보냈다고 했다.

안 전문인은 "마음만 받겠다고 하고는 선물을 돌려드렸다"며 "민원인이 지난날의 어려움을 지렛대로 삼아서 행복한 삶을 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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