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패러다임과 조선업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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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 패러다임과 조선업 구조조정
  • 연합뉴스
  • 승인 2016.06.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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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로 연합뉴스 논설위원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가진 세기의 대결에서 1대 4로 완패한 일은 역사적 사건이 됐다. 대국 직전까지 이세돌의 완승을 점쳤던 바둑전문가들은 막상 1국부터 알파고가 빈틈없는 착점을 이어가자 충격과 혼돈에 빠졌다. 곧바로 '인류대표의 패배' '바둑 패러다임의 새로운 혁명' '바둑 이론을 뒤엎는 착점' '바둑의 종말' 등등 자극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인공지능이 바둑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듯했다.

세기의 대결이 치러진 지 석 달이 지났다. 당시의 충격과 흥분은 많이 가라앉았다. 평정심을 되찾고 당시 나온 여러 전문가의 논평을 다시 훑어 보았다. 대부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느닷없는 현상을 해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한 글이 있다. 프로기사 출신인 문용직의 평가다. 그가 말한 요지는 이렇다. "인간의 이론이라면 있을 수 없는 수라는 해설은 잘못됐다. 그것은 이미 시도된 적이 있으며, 다만 '잘 안 쓰는 수법'이라고 해야 한다. 알파고는 창의력이 아니라 계산에 능했을 뿐이다. 알파고는 현재 바둑 수준 속에 있고 계산에 앞섰을 뿐이다…."

문용직 프로는 알파고가 예리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이었다고 봤다. 일본 바둑의 일인자인 이야마 유타 9단도 "인공지능이 아니면 둘 수 없는 수가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고 비슷한 평가를 했다. 문용직 프로가 알파고의 능력을 무시한 건 아니다. 그는 "언젠가는 올 혁명적인 세상이 도래했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패러다임 혁명은 잘못 쓰인 말이라고 단언했다. 바둑의 패러다임은 변하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그것은 구조주의 패러다임이 여전히 유용하며 강력한 분석 도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용직 프로는 '바둑의 발견'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바둑을 도사쿠 바둑 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고 말한다. 일본의 제4대 혼인보로 13단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바둑 4천 년 역사상 가장 강했다는 인물이 도사쿠다. 도사쿠는 근대바둑의 조상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그가 바둑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꿨기 때문이다. 문용직은 이 패러다임을 구조주의라고 말한다. 그는 인류학자 레비 스토르스의 개념을 차용해 설명한다. 『부분과 전체는 연결되어 있으며 부분은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전체는 논리적으로 부분에 앞선다는 것, 바로 이것이 구조주의의 안목이라 하겠다.』

그는 추상적인 개념인 바둑의 구조주의를 이렇게 풀어낸다. "부분적인 전투는 도사쿠 이후 새롭게 인식됐다. 부분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앞선다면 인정할 만하다. 부분은 전체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의미가 결정된다." "구조주의 사고를 바둑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효율의 개념이 충족되어야 한다…. 효율이 높다는 것은 돌의 개수(투입)에 비해 산출(두터움, 세력, 실리 등)이 크다는 것이며, 효율이 낮다는 것은 산출이 적다는 것이다. 도사쿠는 상대를 중복시키는 수법을 많이 사용했다. 부분적인 중복이 아니라 전국적인 시각에서의 상대의 중복! 이야말로 구조주의적 사고를 접목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빈사 상태에 빠진 조선업이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올라있다. 조선업 전체가 걸려있으니 산업 구조조정이기도 하고, 기업 구조조정이기도 할 텐데 여기서 말하는 '구조'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찰해 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기업 구조조정이란 것은 부실하거나 비능률적인 사업조직을 폐지, 축소하거나 중복 부문을 통폐합하는 수단을 말한다. 바둑에서 말하는 구조주의 패러다임의 실천적 방법을 그대로 닮았다. 효율성 제고를 통한 산출능력 향상과 역량의 중복을 해소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그러나 효율성 제고와 중복 해소는 목표 자체가 될 수 없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12조 원을 투입한다는 정부 방안대로 해도 부실 조선업이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거니와 설사 생명을 연장한다 해도 잠정적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달리 말하면 전체 판을 보는 구조주의적 판단이 없다는 지적이다. 구조주의 패러다임은 이렇게 말한다. 부분의 성패는 결정적이지 않으며 전체적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부분적인 손해로 보이는 것이 전체에 득이 된다면 그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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