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불확실성 시대의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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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불확실성 시대의 생존 전략
  • 연합뉴스
  • 승인 2016.07.0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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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저성장, 불확실성 시대로 접어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세계 경제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 위기의 후유증으로 여태껏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는 글로벌 경제를 불확실성 속으로 던져 넣었다. 앞으로 세계는 기존의 개방, 자유 무역 체제를 지속할지, 각국이 빗장을 지르고 보호주의로 '각자도생'할지 알 수 없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세계 경제가 비상할 가능성은 브렉시트로 인해 물 건너간 것 같다. 소규모 개방 경제 체제이고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이런 흐름을 거스르기는 역부족이다. 한국 경제 역시 세계 경제와 마찬가지로 저성장,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다.

압축, 고속 성장에 익숙한 한국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생존과 성장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생존 전략의 하나가 '빚 줄이기'다. 현재 가계, 정부, 기업이 안고 있는 빚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불확실성은 앞으로 투자 이익을 거두기는커녕 빚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기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 가정과 기업들은 너도나도 빚을 끌어다가 재산을 불렸다. 빚을 내 투자하면 이자를 훨씬 능가하는 이익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투자 대상이 부동산이었고, 그 결과 부동산 신화와 신기루를 아직 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 가계부채는 지난해 1천200조 원을 넘은 데 이어 올해 1분기 말에는 사상 최대치인 1천223조7천억 원을 기록했다. 가계부채는 2013년 2분기부터 11분기 연속 사상 최대 기록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7%다. 13년째 신흥국 중 최고다. 한국 경제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뇌관'으로 거론된다. 은행권이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하는데도 가계부채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금리 인하는 이 증가세를 더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된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590조5천억 원으로 GDP 대비 37.9%였다. 1997년에 60조3천억 원, GDP 대비 11.9%였던 것과 비교하면 약 20년 만에 530조 원가량이 불어났다. 올해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으로 600조 원을 돌파해 700조 원을 향해 달려갈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는 재정이 건전하다는 입장이다. 부채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115.2%)보다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OECD 회원국과 비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세계 최대 경제국가인 미국이나, GDP 대비 국가부채가 250%에 육박해도 경제 기반이 워낙 튼튼해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선호되는 일본과 우리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부채 증가 속도도 너무 빠르다. 한국의 명목 GDP가 1997∼2015년 연평균 3.2배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의 국가채무는 9.5배 늘어났다.

한국은 국가채무에 정부사업을 대행하는 공공기관 부채가 포함돼 있지 않아 이를 포함할 경우 실질적인 국가채무가 약 2배로 늘어난다. 공공기관 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505조 원으로, 국가채무 규모와 맞먹는다. 군인, 공무원 연금 등 정부가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충당부채 약 500조 원, 산업·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 부채 약 500조 원을 더하면 광의의 국가채무 총액은 2천조 원 이상으로 불어난다.

우리나라 기업부채는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1천631조7천억 원에 달한다. GDP 대비 비율은 2010년 말 99.0%에서 작년 9월 말 106.0%로 높아졌다. 이 비율은 신흥국 중 중국 다음, 주요 국가 중에서는 5번째로 높다. 한국은행의 자금순환(잠정)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가계 및 비영리단체, 비금융법인기업, 일반정부의 금융부채 총액은 4천713조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GDP의 3배를 넘었다. 가계, 기업, 국가부채가 총체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5천만 원을 넘고, 소득이 받쳐주지 않는데도 고급 승용차를 몰고,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쓰는 돈 안에 빚이 있기 때문이다. '부채 공화국'이 빈말이 아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무분별하게 통화를 확대한 것이 큰 원인이다. 급증한 유동성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금융기관의 쉬운 대출이 기업과 가계의 빚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속담은 '빚진 죄인' '빚 준 상전이요, 빚 쓴 종이라.' 했다. 빚진 자는 자유가 없는 노예라는 뜻이다. 저성장 시대에는 원금은 고사하고 빚 이자 갚기도 쉽지 않다. 불확실성까지 겹쳐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장사든 투자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고용 불안도 커지는 추세다. 불확실성 시대를 살면서 위기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첫째 조건이 빚을 줄여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영남에는 한 해 마지막 날인 음력 섣달그믐에 그해 빌린 돈과 물건을 모두 갚거나 돌려주는 풍속이 있었다. 후대에 빚을 상속하며 재정적자를 늘리는 정부나, 금융기관 대출을 눈먼 돈으로 생각하는 기업이나,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대책 없이 빚을 끌어다 쓰는 가계의 도덕적 해이가 굳어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은 금융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폭탄 돌리기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사회로 사는 지름길이다. 저성장 불확실성 시대에는 빚 줄이기가 새 표준(뉴노멀)이 돼야 한다.

한경숙 연합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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