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웃으면 복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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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웃으면 복이 옵니다
  • 연합뉴스
  • 승인 2016.08.3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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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구봉서가 별세한 지난 27일 후배 개그맨들은 대부분 부산에 있었다.

전날 부산코미디페스티벌이 개막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4회를 맞는 이 행사는 예전 같지 않은 코미디의 인기를 부활시키려는 코미디언(혹은 개그맨)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진행하는 행사다.

그에 앞서 지난달에는 서울 홍대 인근에서 제1회 홍대 코미디위크가 열렸다. 역시 개그맨들이 하나둘 뜻을 모아 무대에 올린 공개 코미디 축제다.

코미디의 인기가 예전만 같지 못하다. 방송채널이 다양해지고,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풍부해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가 과거에 비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일요일 밤을 대표하던 KBS 2TV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이 한자릿수대로 추락한 지 오래다.

살기가 각박해지면서 웃음에 대한 사람들의 포용력이 좁아졌다거나, 개그계 대표선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그맨들은 요즘 대부분 '먹방'이나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패널로 얼굴을 내민다. 그렇지 않으면 무리수를 둬서 타인을 비하하는 개그를 펼쳤다가 뭇매를 맡거나, 이른바 '19금 개그'를 표방하며 순수한 코미디보다는 성적인 코드에 상당 부분 기댄 개그를 선보인다. 남녀노소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콩트 코미디나 풍자, 패러디 개그를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 해외 공연 중인 '옹알스'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 문제의식을 느낀 개그맨들이 스스로 코미디 페스티벌을 기획하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옹알스처럼 맨주먹으로 용감하게 해외시장 개척에 뛰어든 선수들도 있다.

구봉서는 한국코미디언협회의 1번 회원이었다. 오르간이 있던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고등학교롤 졸업한 후 엄마를 졸라 얻은 독일제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예술적 재능을 뽐내다 악극단에 들어가면서 코미디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의 한국 코미디는 구봉서에게 많은 부분을 빚졌다. 그가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면서도 코미디에 대한 사명감과 사랑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발굴됐고, 그의 바통을 이었다.

구봉서는 6.25가 발발하던 날 전쟁이 난지도 모르고 술을 마시고 잤다가 다음날 양훈, 고복수 등 악극단 선배들과 함께 인민군에 끌려갔다. 인민군의 총구 앞에서 동료들을 먼저 도망가게 하는 리더십과 배짱을 발휘한 그는 마지막으로 구사일생 탈출에 성공한 후 악극단 활동과 함께 1년에 20편씩 영화를 찍으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 구봉서와 배삼룡, 서영춘코미디언 구봉서는 우리나라 희극계의 대부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연예계의 거목으로 배삼룡 등과 콤비를 이뤄 1960~80년대 한국 희극계를 주름잡으며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사진은 70년대 개봉한 영화 '형님먼저 아우먼저' 포스터에 등장하는 구봉서(왼쪽부터), 배삼룡, 서영춘.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위기는 또 왔다. 영화를 찍다가 낭떠러지에서 추락해 다리가 으스러지면서 다리 절단의 위기까지 갔다.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라디오 방송을 이어갔던 그는 자신이 출연하기로 했던 영화에 서영춘을 추천해 대신 출연하게 하면서 서영춘 시대를 열었다.

또 한국 최초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1969년 MBC '웃으면 복이 와요'가 시작할 때는 '재야의 스타' 배삼룡과 함께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방송 출연을 승낙했다.

그는 늘 재능있는 코미디언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고, 의리를 지켰으며, 저질 웃음이 아니라 호소력 있는 웃음을 주고자 노력했다. 또 정권의 압력으로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됐을 때는 위정자 앞에서 당당하게 쓴소리도 했다. 자만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자기 관리에도 철저했다는 게 선후배 코미디언들의 증언이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어도 말로가 좋지 않았던 많은 동료의 삶과 단적으로 비교된다.

1971년 공무원의 월급이 2만~3만원, 택시 기본요금이 80원이던 시절 '웃으면 복이 와요'의 1회 출연료로 구봉서가 받은 돈은 3만5천원이었다. 남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준 대가는 그렇게 높았다.

구봉서의 인생이 후배들에게도 희망이 되길 기대해본다. 지금 당장은 배고프고, 코미디만 해서는 앞길이 불투명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웃음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진다. 남을 낮추는 얄팍한 입담이 아니라 울림과 여운이 있는 코미디가 그립다.

구봉서는 평소 "마구 웃기다가 순간 눈물 흐르게 하는 게 코미디다" "웃음과 눈물은 몇 ㎜ 차이다"라고 말해왔다.

진정한 '희극'을 파고드는 코미디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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