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 30년> ③이번엔 개헌 문턱 넘어서나…국민 지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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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③이번엔 개헌 문턱 넘어서나…국민 지지가 관건
  • 연합뉴스
  • 승인 2016.10.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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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떠난 화살' 정치권 논의 봇물…권력구조 개편이 논의 핵심
10번째 역사적 개헌, 난제 산적…'정치적 셈법' 뛰어넘어야
▲ <87년체제 30년> 이번엔 개헌 문턱 넘어서나 6ㆍ10 민주항쟁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 합의에 의해 이뤄낸 1987년 9차 개헌은 헌정사에 한 획을 그으며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서른 살 헌법'은 더이상 세계화ㆍ정보화ㆍ지방화라는 21세기의 새 흐름을 담아내지 못한 채 오히려 국가 재도약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1987년 7월 열린 통일민주당의 헌법개정공청회(왼쪽)와 제20대 개원을 앞둔 국회(오른쪽).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주춧돌이 된 제헌(制憲) 헌법은 우리 국민이 겪은 격동과 굴곡의 '70년 현대사'를 함께 하며 9차례의 손질을 거쳐 현재의 '전문ㆍ10장(章)ㆍ130조(條)ㆍ부칙'의 형태를 갖췄다.

짧게는 5개월(4차 개헌), 길게는 8년(8차 개헌) 만에 이뤄진 각각의 헌법 개정은 그러나 대부분이 정당한 절차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권력의 초법적 전횡에 의해 이뤄지는 비운을 겪었다.

6ㆍ10 민주항쟁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 합의에 의해 이뤄낸 1987년 9차 개헌은 헌정사에 한 획을 그으며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서른 살 헌법'은 더이상 세계화ㆍ정보화ㆍ지방화라는 21세기의 새 흐름을 담아내지 못한 채 오히려 국가 재도약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매번 '시기상조'라는 상황 논리에 막혀 휴화산처럼 잠복했던 개헌논의가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정국의 한복판으로 치닫는 근저에는 이런 비판적 시각과 함께 정치적 조건과 환경이 충분히 무르익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20대 국회 출범 후 여야 의원들의 '개헌추진 모임'과 원외 유력인사들의 '개헌 국민주권회의' 등이 잇따라 출범하면서 원 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헌론에 불을 지피는 분위기다. 여야 차기 대선주자들도 상당수 개헌 당위론에 가세하며 공론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동안 개헌에 거리를 뒀던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임기 내 개헌'을 공식화한 것도 개헌 추동력에 상당한 힘을 보태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면서 "정파적 이익이나 정략적 목적이 아닌 대한민국의 50년, 100년 미래를 이끌어 나갈 미래지향적인 2017체제 헌법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개헌을 위한 정부 내 개헌조직 설치 및 실무준비 착수를 천명하고 국회에 개헌특위 구성을 촉구했다. 개헌 시기와 함께 구체적인 추진 방식 등에 대해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과거와 같이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고 정치권과 국민의 요구가 하나가 되는 '줄탁동기'(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의 성과물로 빛을 보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가 산적하다.

'1987년 체제를 뛰어넘자'는 개헌론의 핵심은 역시 권력구조 개편이다.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된 권력형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폐해를 청산해야 한다는 게 논의의 출발이다.

방법론으로는 정치권 일각에서 독일식, 스웨덴식 등 다양한 형태의 의원내각제 도입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우리의 정당 민주화 수준, 국회의원의 정치적 역량 등을 감안할 때 성공 가능성에 일부 회의적 인식이 있다. 반면 직선제 대통령제에 대한 여론 선호가 높다는 점에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혹은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상대적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결국은 유권자 표심이 '51대 49'라고 하더라도 권력은 '100대 0'이 되는 승자독식 구조로 인해 대권을 향한 사생결단이 반복되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왜곡을 극복하고 '협의 민주주의'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적인 비교정치학자인 미국 샌디에이고대 아렌드 레이파르트 교수는 "균열이 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협의주의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사회적 갈등에 따른 비용 부담이 큰 우리나라에서 개헌논의 과정에서 귀담아들을 만한 조언이다.

대한민국의 특수상황에서 개헌논의의 또 다른 화두는 '국민기본권'과 '한반도 통일' 문제다. 무려 30년이 지난 만큼 기왕에 뜯어고치려면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이 돼야 한다는 '포괄적 개헌'에 대한 요구를 바탕으로 한다.

우선 헌법규범이 국민의 생활규범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정보화의 대장정을 거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감안해 '권력의 기술'에 치우친 헌법의 무게추를 옮겨 국민기본권을 재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하다.

아울러 분단상황과 관련된 헌법 규정들도 차제에 통일시대에 대비해 정치권과 국민이 함께 호흡하며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개헌의 '타임테이블'도 합의가 필요한 선결과제다. 가장 큰 분기점은 단연 내년 12월 대선이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이면 어김없이 개헌론이 분출했던 전례와 다르지 않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재ㆍ보궐 선거를 겸해 개헌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정치권 논의와 준비 등의 기간을 감안하면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반론이 맞선다.

이에 따라 여야 대선주자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다음 정부 초기에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대안이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헌의 방식ㆍ시기와 직결된 차기 대통령이나 국회의 임기 축소 문제도 개헌추진 과정에서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한다면 새로 원(院) 구성을 해서 총리를 뽑아야 하는 만큼 현재의 국회는 해산돼야 한다.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한다고 해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려면 내년 말 대선 직후 총선을 치러야 한다. 결국, 20대 국회의 임기는 절반이 잘려나가는 셈이다.

이를 피해 국회 임기를 보장하려면 차기 대선을 앞당겨야 하고 결과적으로 19대 대통령의 임기는 3년이나 깎이게 된다. 지지율이 높은 유력 대선주자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이라는 점에서 개헌 추동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7월 제헌절을 앞두고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낡은 틀을 깨뜨리는 건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필연"이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을 깔고 있다.

다만 정치 전문가들은 지금이 개헌 적기라고 지적한다. 30년이 지난 87년 체제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데다 개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 있기 때문이다.

개헌의 한 축인 국회의 경우 `20대 국회 개헌추진 모임'에 200명이 넘는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선 217명의 응답 의원들 가운데 203명이 개헌에 찬성하는 등 대부분이 개헌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개헌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 개헌을 위해 거쳐야 하는 3대 요건인 개헌 발의(대통령·국회의원 과반), 개헌 의결(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개헌 국민투표(선거권자 과반수 투표·과반 찬성)를 충족하고 있다.

하지만 북핵사태와 경제난 등 내외부적인 파고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개헌이 추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한결같은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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